그 놈의 자존심 때문에... 대영제국 모터사이클의 흥망성쇠

2019-09-27 11:52:58



출생지에 따른 모터사이클 브랜드 특성 (10) 영국
크레이트 브리튼의 자존심

[최홍준의 모토톡] 영국을 대표하는 모터사이클 브랜드로 트라이엄프가 있다. 한때 유럽의 레이스를 비롯해 양산형 모터사이클 시장에서도 높은 점유율과 인지도를 가지고 있던 영국제 브랜드는 자동차 브랜드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프리미엄을 지향했으며 대량 생산보다는 소규모 제작을 주로 했다. 기술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고 디자인에 대한 철학도 있었다. 그러나 대영제국이라는 자신감은 경제공황과 오일쇼크로 인해 무너졌다. 소규모 생산으로 인한 높은 가격은 경쟁력이 약해졌고 파업을 자주하는 고임금 노동자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도 이름이 남아있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브랜드는 노튼과 브로프 슈페리어. 럭셔리 브랜드로 유지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대량생산과 회사의 지속가능성은 희박하다. 역사와 전통 그리고 레이스에서의 기록이 남아있는 BSA, 리바이스, 선빔, AJS 등은 그야말로 기록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트라이엄프와 로얄엔필드는 지금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한 듯 고품질 대량생산을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 모델 체인지를 통해 성장세를 높여가고 있다.



◆ 헤스케스 (Hesketh)

1982년 영국의 실패한 모터사이클 산업을 부활시키려는 알렉산더 헤스케스에 의해 시작되었다. 독자적인 V트윈 1000cc 엔진을 장착한 모델을 만들어냈지만 너무 무겁고 불안정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공장을 판매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트라이엄프가 공장 시설을 인수하고 싶어 했지만 트라이엄프마저도 재정문제에 시달리고 있던 때라 그러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V1000 뱀파이어라는 모델을 만들며 회생을 노렸지만 결함이 많아 고작 40대만 생산하고 1984년 문을 닫게 된다. 헤스케스의 엔지니어이자 테스트라이더였던 믹 블룸을 거쳐 폴 슬리맨 등이 다른 사업을 하며 재정을 충당 2014년에 헤스케스24라는 신모델을 발표하기도 했다.



◆ 브로우 슈페리어 (Brough Superior)

1919년 유명 모터사이클 엔지니어의 아들이던 조지 브로우가 만든 브로우 슈페리어는 초창기 신문광고 카피 ‘모터사이클의 롤스로이스’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런 표현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고객의 주문대로 하나씩 맞춤으로 만들었고 고품질에 고성능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24년에 출시한 SS100은 그야말로 시속 100마일을 넘게 달려 슈퍼스포츠(SS)라는 이름이 붙기에 합당했다.

브로우 슈페리어는 소량 주문제작을 고수했다. 당연히 가격도 어지간한 월급생활자의 1년 연봉이었다. 그러나 승차감과 성능은 그 값어치를 했고 당시 가장 비싼 모터사이클이었다. 귀족만을 고객층으로 삼았기에 한 대, 한 대 호화롭게 만들었다. 1930년대에는 자동차도 생산했지만 1940년 모든 생산이 중단되었고 짧은 역사가 끝이 났다. 하지만 부품은 1969년까지 공급했다.

대부분 귀족들에게 팔렸고 유지보수가 잘 이어졌기에 2000년대에도 약 1000여대의 브로우 슈페리어 모터사이클이 정상적인 운행을 할 수 있었다. 일찍 생산이 멈췄지만 그 성능과 아름다운 디자인만은 계속 회자되었다. 2005년 브로우 슈페리어를 사랑하던 수집가 마크 업햄이 브랜드의 모든 권리를 사들였다. 2013년 모든 준비를 끝내고 부활을 선언. 2015년 SS100 MK2와 펜다인 MK1을 발표했다. 지금도 주문 제작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 BSA (Birmingham Small Arms Company Limited)

이름처럼 총기 제조로 시작된 회사로 1861년 시작되어 각종 철강 제품과 자동차와 모터사이클 등도 만들었다. 초기에는 소총을 대량 생산했으며 자전거와 탄환도 같이 생산했다. 그러다 1910년부터 모터사이클도 개발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자동차도 같이 만들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비행기용 엔진과 폭격기 등도 만든 거대 회사였다.

BSA는 1930년대까지는 영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가장 큰 모터사이클 제조업체 중 하나였다. 이는 트라이엄프를 자회사로 편입시킨 덕분이기도 했다. 이후 노튼까지 한 지붕 아래에 두게 된다. 그러나 1950년대부터 품질 문제가 불거지고 신제품이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미국 시장에서 판매가 급감했지만 경영진은 방대한 회사를 둔 덕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1960년대부터 일본제 브랜드가 미국 시장을 잠식하고 유럽까지 밀고 들어오자 BSA는 더 이상 유지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본사가 BSA 모터사이클 자회사였던 ‘노튼 빌리어스 트라이엄프’의 파산을 결정했고 BSA 모터사이클에 대한 권리는 BSA라는 이름으로 군용 모터사이클과 개발도상국용 저배기량 모터사이클 생산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후에도 몇 번의 인수와 합병이 이어지다가 2016년 인도의 마힌드라 그룹으로 인수되었다. 지금은 야바(JAWA)의 이름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 노튼 (Norton)

1898년 영국 버밍햄에서 무역회사로 시작된 노튼은 1902년 스위스와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엔진을 바탕으로 모터사이클 제조하기 시작해 1908년에 자체 엔진을 만들었고 자체 엔진을 개발하며 본격적인 시작이 된다. 맨섬 TT등 각종 레이스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며 세계대전 중에도 모터사이클 생산을 이어갔다. 군용 모터사이클을 비롯해서 다양한 모델을 만들어 1950년대 이전에 이미 10만대가 넘는 총 생산량을 달성하기도 했다. 500~750cc 모델들이 북미 시장에서도 인기를 끌었으며 특히 1968년에 만든 노턴 코만도는 부드러운 승차감과 뛰어난 동력 성능으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영국 최대의 모터사이클 제조업체는 ‘BSA 트라이엄프’였다. 그러나 품질관리가 잘 되지 않았으며 노조는 파업을 자주 일으켰고 설계는 구식에다가 제조 공장 또한 오래되었다. 노튼은 이보다 훨씬 작은 회사였지만 기술과 생산력으로 합병을 주도하고 금속회사의 자본을 끌어들여 ‘노튼 빌리어tm 트라이엄프’를 구성하게 되었다. 정치적인 문제가 더해져 소유권에 대한 잡음이 끝이지 않았지만 노튼은 이름을 유지하며 생산을 이어나갔다. 1980년대 말에 부채 때문에 생산이 중단되고 소유권이 이리저리 팔려 다니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코만도 시리즈의 재생산이 준비되기도 했지만 곧 중단되었고 소유권은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다.

2011년에 두카티와 모토구찌 등에서 일하던 유명 모터사이클 디자이너 피에르 테르블란치가 노튼으로 이적한다고 발표. 그의 이적보다 노튼이 다시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에 더 큰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2011년에 영국 정부의 자금 지원으로 영국 도닝턴에 새로운 공장을 세우고 소규모 생산을 이어가고 있다.



◆ 로얄 엔필드 (Royal Enfield)

1850년 바늘 같은 것을 만들던 조지 타운샌드 회사는 자전거 페달을 만들면서 엔필드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01년에는 자동차를 만들어 전국에 보급했고 1909년에는 간단히 시동을 걸어 탈 수 있는 획기적인 모터사이클을 만들어낸다. 그러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왕실의 요청으로 기관총을 부착할 수 있는 모터사이클을 주문받고 제작에 들어간다. 군용 모터사이클을 꾸준히 만들어서 영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에도 공급했고 2차 대전때도 다양한 배기량의 모터사이클을 공급했다. 현재까지 이름이 남아있는 불렛이나 트윈스 모델들도 모두 이때 기틀이 만들어진 것이다. BSA와도 관계가 깊어 자전거 부품 부문을 BSA로 넘기기도 했고 자동차 생산에서도 협력관계였다.

1955년 인도의 국경수비대가 모터사이클이 필요해져 불렛 모델 800대를 주문했다. 그러자 로얄엔필드는 인도의 첸나이 지방의 마드라스 모터스와 계약을 맺고 불렛 시리즈를 생산할 수 있는 계약을 체결한다. 처음에는 영국에서 수입한 부품을 조립하기만 했지만 1957년부터는 부품 제조할 수 있는 기계를 설치했고 1962년부터는 모든 부품이 인도에서 만들어져 조립되었다. 이후 1990까지 계속해서 불렛을 만들어냈다. 그러다 인도의 에이체 그룹에 합병되고 모터사이클 생산을 잠시 중단했다가 새로운 공장에서 생산을 지속했다.

영국의 경제 공황은 엔필드도 피해갈 수 없었다. 엔필드의 지분을 다수 보유하고 있던 BSA가 합병을 결정했고 결국 ‘노튼 빌리어스’로 인수된다. 1967년 메디치의 유서 깊은 공장이 생산을 중단했고 1971년에는 모든 공장이 문을 닫으며 역사상 가장 오래된 모터사이클 브랜드는 끝이 나고 말았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꾸준히 생산을 거듭해왔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어 새로운 모델이 개발되고 품질 개선이 이루어져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올 초에는 국내에도 새로운 수입사가 생겨 저렴한 가격에 로얄엔필드 인디아의 모터사이클을 만날 수 있게 됐다.



◆ 트라이엄프 (Triumph)

1885년 트라이엄프 엔지니어링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트라이엄프의 역사는 1896년 자전거를 시작으로 1889년에는 모터사이클을 생산했다. 1905년 모든 것을 자체 설계한 최초의 모터사이클을 출시해 250대 이상을 생산했다. 1차 대전 때에 3만대 이상의 군용 모터사이클을 공급했고 1920년대에는 자동차도 만들어 영국의 주요 자동차, 모터사이클 업체가 되었다. 2차 세계 대전 때는 코번트리의 공장이 독일의 폭격으로 파괴되기도 했지만 생산이 멈춰지진 않았다. 전 후에는 스피드 트윈과 타이커 시리즈가 미국으로 대거 수출되며 활발히 움직였다.

미국에서 최고속도 기록을 남기기도 했고 영화에 출연하며 그 이름을 더욱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트라이엄프는 이미 BSA로 휘하에 있는 상황이었다. 1960년대 이후 일본제 브랜드가 밀고 들어오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최고속도와 핸들링 등은 월등했지만 디스크 브레이크와 4기통 엔진, 거기에 누유가 거의 없어 유지보수를 할 필요가 없었던 일본제 모터사이클은 영국의 거의 모든 브랜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BSA 그룹은 결국 큰 손실을 입으며 정부로 주도로 노튼, AJS, 매치리스, 빌리어스 등을 소유한 매그니스 브론즈 홀딩스로 인수되었다. 이게 1972년의 일이다. 이후 매그니스 브론즈 홀딩스의 자회사인 ‘노튼 빌리어스’는 ‘BSA 트라이엄프’의 형태로 유지되도록 했다. 그러다 곧 ‘노튼 빌리어스 트라이엄프’로 합쳐지게 되었고 노튼이 모든 경영 지휘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 1977년 이 연합체도 흔들리게 되었다. 1980년대에는 새로운 주인 밑에서 생산을 이어갔고 판매도 좋았지만 그간 쌓인 부채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1983년 파산을 선언했다.

1991년 부동산 재벌 존 블루어가 트라이엄프의 모든 권리를 사들여 생산을 재개했다. 지금은 새로운 모델들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으며 정통 클래식 스타일에 현대적인 기술을 가미해 높은 폭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풀 모델 체인지 되고 있는 트라이엄프의 모터사이클은 십수 년간의 부진을 씻고 프리미엄 브랜드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영국 모터사이클의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으로 인해 흥했다가도 공항과 경제 불안으로 흔들리기도 했다. 대부분 지분의 형태를 나눠서 소유했기에 인수와 합병도 많았다. 자본가들의 투자회사에 인수되었다가 사업 분야가 토막 나서 이리저리 넘어 다니기도 했다. 수많은 브랜드가 탄생했지만 명맥을 오래 유지한 브랜드는 몇 되지 않았다.

영국을 대표했던 모터사이클 브랜드인 노튼과 BSA, 트라이엄프 등이 모두 같은 소속이었던 적도 있었고 대립하던 시절도 있었다. 영국 브랜드는 대중성보다는 프리미엄을 지향했다. 모터사이클이라는 것 자체가 초창기에는 시동을 거는 일조차 복잡한 일이었기에 일상적인 탈 것 이라기보다는 귀족들의 장난감 개념이었다. 그것을 간단하게 만든 것이 로얄엔필드였다.

노튼과 BSA, 트라이엄프는 엔진, 프레임, 그리고 품질 등 각자의 장점이 있었고 한 곳에 있었을 때는 그 장점이 공유되어 높은 퍼포먼스를 가진 모델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제 브랜드의 공세와 품질 저하, 그리고 잦은 공장 파업 등으로 인해 생산성이 떨어져 쇄락을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브랜드는 미국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던 트라이엄프와 인도로 본거지를 옮기게 된 셈인 로얄엔필드, 그리고 럭셔리 모터사이클을 지향하는 브로우 슈페리어 정도이다. 영국의 자존심은 뛰어난 모터사이클을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그 자존심 때문에 경영 악화를 불러오기도 했고 신모델 개발을 게을리 하기도 했다. 영국의 모터사이클 브랜드는 잦은 인수와 합병으로 복잡한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칼럼니스트 최홍준 (<더 모토> 편집장)

최홍준 칼럼니스트 : 모터사이클 전문지 <모터바이크>, <스쿠터앤스타일>에서 수석기자를 지내는 등 14년간 라디오 방송, 라이딩 교육, 컨설팅 등 여러 활동을 했다. <더 모토> 편집장으로 있지만 여전히 바이크를 타고 정처 없이 떠돌다가 아주 가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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