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보잡’ BMW가 호화 컨버터블로 미국에서 당한 굴욕

2019-09-30 13:32:29



BMW 507 그리고 Z8 (1)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전쟁은 누군가를 피폐하게 만들지만, 다른 누군가를 번영으로 이끌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경험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다져갔다. 세계 최고의 생산국이면서, 최대 수입국이 된 나라는 동경하던 유럽의 좋은 물건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자동차라고 예외일 리가 없었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포르쉐는 물론이고 재규어, 알파로메오 같은 유럽브랜드들이 처음으로 미국에 진출했으며, 폭발적인 판매신장을 경험했다. 미국시장만을 바라보고 만든 고성능 스포츠모델 시장이 새롭게 탄생했으며 이 때 발매된 차들은 하나같이 걸작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단 한사람을 통해 이루어졌다.



◆ 맥스 호프만

맥스밀리언 에드윈 호프만(Maximilian Edwin Hoffman). 통칭 맥스 호프만이라 통하는 그는 자동차 딜러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다. 전쟁만 터지지 않았다면 고향 오스트리아에서 미국차를 팔며 계속 살았을지도 모르며,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유명세는 얻지 못했을 것이다. 유태인에 대한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전쟁이 끝나자 그냥 원래 하던 일을 반대로 한다. 유럽의 고급차들을 차근차근 미국에 선보인 것이다. 재규어도, 벤츠도, BMW도 그의 손에 이끌려 미국에 들어왔다.

시간이 지나자, 그는 미국 수입차 전체를 상징하는 거물이 된다. 그는 미국시장을 위한 개수를 요구했으며, 제조사는 기꺼이 그의 의견을 따랐다. 점점 커진 그의 권력은 나중에 아예 차를 새로 만들어 오라는 수준으로까지 커진다. 호프만 때문에 태어날 수 있었던 유명한 차는 많다. 하지만 그 중에 대표라면 단연코 한 대의 차다. 메르세데스-벤츠 300SL.



300GL은 애당초 부자들 폼 잡는 일과는 상관없는 레이스카였다. 구조적으로 높은 강성을 지니기 위해 각재로 구조물을 엮은 튜브 프레임 섀시를 짰고, 이 때문에 문을 달 방법이 마땅치 않아지자 궁여지책으로 지붕과 창문만 통으로 수직으로 열리게 터 놓았던 차였다. 원래 호프만이 만들어 내라고 할 차는 포뮬러원의 이미지가 담긴 차였지만, 이 차의 ‘문’이 솟아오르는 걸 본 순간, 그는 직감한다. 이걸 양산하자는 요구에 처음엔 어리둥절한 메르세데스-벤츠였지만, 돈 앞에 안 될 일이 있나. 쪼들리던 살림에 갑자기 뚝 떨어진 1,000대의 선주문은 한줄기 광명이나 다름이 없었다. 호프만의 상세한 요구사항에 따라 실내에 가죽을 바르고 승객편의를 끌어올린 도로사양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차는 전설이 된다.



미국산 고급 쿠페보다 3배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주문량을 넘긴 1,100대의 차가 팔려 나간다. 배우와 유명인들이 앞다퉈 이 차를 손에 넣으면서 300SL은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하드탑 쿠페의 성공을 따라 로드스터와 염가형 190SL까지 시판되었으며, 둘 다 쿠페를 훌쩍 넘는 숫자로 팔려 나갔다. 300SL의 성공은 메르세데스-벤츠에게 수익 이상의 값진 성과까지 가져온다. 튼실하지만 지루한 승용차 제조사의 이미지를 한방에 날리고, 고성능 럭셔리 브랜드로 이미지가 뒤집어진 것이다.

300GL의 성공으로 호프만의 입지는 더욱 강화되었다. 그는 메르세데스, 폭스바겐, 알파로메오, 재규어, BMW의 북미 딜러망을 독점했고, 이들 모두와 북미용 스페셜 모델을 새로 만들었다. 알파로메오 줄리에타도, 포르쉐 356 스파이더도, 전부 이 사람이 제조사를 휘둘러 만들게 한 차들이었다. 그는 독점 계약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적절하게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역으로 제조사를 압박하기까지 했다.



사업의 이면에서는 방대한 딜러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독점권을 회수하려던 공급사와는 소송을 불사하며 싸웠고, 비싼 값에 권리를 되팔아 이익을 챙겼다. 마피아와의 관계를 은연중에 강조하며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장사꾼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뛰어난 기획자였다. 자동차 제작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음에도, 제품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으로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관철시켰다. 개발을 시키고 나서도 마음에 안들면 가차없이 퇴짜를 놓고 다시 만들 때까지 제조사를 들볶아 댔다. 이렇게 만든 차는 모두 성공했다. 단 한 대만 빼고.



◆ BMW, 벤츠를 따라가다

지금이야 메르세데스-벤츠와 양대 산맥을 이룬 회사지만, 1950년대의 BMW는 주력생산기지를 동독에 남겨 놓은 채 빈털터리가 된 뒤, 냄비와 프라이팬을 거쳐 모터사이클 생산을 재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세업체였다. 하지만 전쟁 전에 이미 고급차 제작을 통해 고수익을 경험해 본 그들에게 자동차산업 복귀가 숙원이었음은 당연지사. 어렵게 은행 융자를 얻어내 전후 첫 차 501을 만들 즈음, 호프만에서 연락을 받는다.



그의 제안은 매력적이었다. 고가인 300SL과 염가인 영국제 MG 스포츠카의 중간에 위치할 ‘5천달러대’의 유럽제 로드스터를 만들어 보자는 제안은 그냥 새 차를 팔 기회 정도가 아니었다. 이건 메르세데스-벤츠의 북미 진출전략, 고성능차가 만든 이미지를 따라 대중모델이 판로를 확대하는 방식을 고스란히 따라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300SL의 발매와 함께 확인한 열광적인 반응을 보며 BMW의 확신은 굳어만 간다. 무지하게 쪼들리는 상황이었지만, 판로가 있다면 융자를 더 받아낼 방도는 있었다.

501의 부품을 최대한 활용한 새 로드스터의 설계가 시작된다. 호프만의 인정사정없는 개입도 따라왔다. BMW의 디자인 원안이 마음에 들지 않자, 아예 디자이너를 갈아 버린 뒤 직접 지시를 내릴 지경이었다. 부자의 장난감은 컴팩트해야 된다는 그의 지론에 따라 전장과 휠베이스도 대폭 줄어들었다. 엔진은 당시 BMW가 처음으로 만든 V8엔진으로, BMW가 가지고 있던 가장 고성능의 엔진이기도 했다. 3.2리터에 150마력, 22kg.m의 출력은 1950년대의 엔진으로서는 준수한 수치였다.



◆ 호프만 유일의 실패한 차

507의 문제는 BMW가 이 차에 너무나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이다. 가능한 기존 부품과 구조물을 활용해서 단가를 떨어트려야 했지만, 호프만의 요구에 따라 성능과 디자인을 맞추면서 거의 모든 부분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그랜드 투어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2+2인 503을 따로 만들었다.



경량화를 위해 거의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바디는, 덕분에 대부분의 절곡과 형상가공을 망치로 두들기는 수공제작에 의존해야 했다. 여기에 8기통엔진까지 탑재되면서 507의 최종가격은 6기통 300SL의 가격을 뛰어넘어 버린다. 300SL이 시판가 7천달러 수준인데 507의 가격은 1만 달러가 넘었다. 때는 1956년, 메르세데스-벤츠에 비하면 BMW는 존재 자체가 알려져 있지 않은 신생업체였다. ‘듣보잡’이라 불러도 할 말 없을 회사의 호화 컨버터블을 사려는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BMW는 한 해 5천대는 팔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호프만의 능력과 함께, 차 하나는 진짜 열심히 만들었다고 자신했기 때문이었다.

BMW의 기대는 처참하게 박살이 난다. 생산이 종료되는 1959년까지 4년 동안 만들어진 507은 252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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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7는 BMW 역사상 가장 적게 생산된 차로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BMW 자체를 망하게 할 뻔했다. 1959년, 507로 인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 경영진은 회사를 메르세데스-벤츠에 넘기려 한다. 회사가 사라지기 일보직전, 절박한 노동자들의 호소에 고민하던 대부호 한 명이 나선다. 그는 자신의 전재산을 털어 BMW의 주식 50%를 손에 넣은 뒤, 회사를 정상화시킨다. 현재도 BMW 지분의 46.7%를 보유한 BMW의 대주주, 소유하되 지배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지키며 60년째 BMW를 이끌고 있는 콴트(Quant) 가문의 등장은 바로 507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부에 계속됩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변성용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13년간 객원기자로 글을 썼다. 파워트레인과 전장, 애프터마켓까지 자동차의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자동차를 보는 시각을 넓혔다. 현재 온오프라인 매체에 자동차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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