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2’ 엘사·안나가 지나치게 예뻐서 불만인 사람들에게

2019-11-29 13:33:23

5년 만에 돌아온 ‘겨울왕국2’의 몇 가지 특별한 지점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5년 만에 돌아온 <겨울왕국2>로 극장가가 북적인다. 과연 기대만큼 잘 만든 작품이다. 가을 숲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화면에 역동적인 장면들을 담아낸 그래픽이 눈부신 발전을 보여준다. 음악도 전편의 ‘렛잇고’ 처럼 귀에 쏙 박히는 넘버는 적지만, 뮤지컬 영화로서 다채로움과 풍부함을 갖추었다. 하지만 진짜 기대 이상인 점은 따로 있다. 서사와 의미의 측면에서 전작의 핵심을 계승하면서 이를 뛰어 넘는 깊이를 지닌다.



◆ 젠더의 문제

<겨울왕국>이 특별한 점은 디즈니 공주 서사의 이성애 중심성을 뒤집었다는 점이었다. 전편은 이성애 중심성을 염두에 둔 채 흘러가다가 두 번의 반전을 통해 이를 뒤집는다. 첫 번째는 한스의 사랑이 거짓이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크리스토퍼의 사랑도 해답이 아니라는 점이다. 안나를 살릴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은 한스나 크리스토퍼에게 사랑의 키스를 받는 행위가 아니라, 안나가 자기 목숨을 걸고 엘사를 구하려는 몸짓에 있었다. 즉 이성애가 아닌 자매애에, 사랑받음이 아닌 사랑함에 방점이 찍힌다. 요컨대 공주를 ‘왕자의 사랑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자매를 사랑하는’ 존재로 재규정한 것이다.

2편은 애초에 이성애 중심성을 간단히 부인하며 시작한다. 어린 엘사와 안나가 눈사람 인형놀이를 하는 장면을 보라. 마법의 숲을 구하기 위해 키스와 결혼이 필요하다는 어린 안나에게 엘사는 숲을 구하기 위해서는 여왕이 되어 직접 뛰어다녀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물론 전체 서사의 복선이다.



여기에 크리스토프의 존재는 미러링에 가깝다. 엘사와 안나가 왕국의 비밀을 풀고, 왕국을 구하기 위해 모험을 펼치는 동안, 크리스토프는 중심서사에서 비껴난 혼자만의 로맨스 망상에 빠져있다. 그는 나름 진지하게 올드팝 뮤직비디오를 찍지만, 그런 진지함이 오히려 하찮고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준비된 청혼의 세레나데는 ‘두 자매가 벌써 떠났다’는 썰렁한 답변으로 돌아온다. 이것은 기존의 영웅 서사의 젠더 뒤집기이다. 남성영웅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동안, 공주는 거대서사가 어찌 돌아가든 남성영웅에 대한 사랑에 빠져 단꿈을 꾸는 순진한 캐릭터로 나오지 않았던가.

크리스토프의 사랑이 모자라거나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이성애자 남자로서 구애도 하고 청혼도 하고, 할 수 있는 것을 죄다한다. 안나도 이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안나에게 크리스토프의 사랑은 절대적인 무게와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즉 그를 사랑해도 언니와의 관계가 더 중요하고, 그래서 말도 없이 떠날 수 있었다. 크리스토프도 이를 수긍한다. 안나의 태도는 ‘나도 너를 (이성애 상대 중 가장) 사랑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내 일과, 내 삶과, 기존 관계들이 있다’는 것인데, 이는 그동안 수많은 텍스트에서 남성의 전유물인양 그려져 왔다. 즉 남자에게 로맨스는 삶의 일부이고, 여자에게 로맨스는 삶의 전부인양 그려져 왔는데, <겨울왕국2>에서는 이것이 뒤집혀 있다.



한편 부모 세대 이야기도 흥미롭다. 30여 년 전 왕자를 구한 것은 이민족 소녀였다. 이두나는 전투가 벌어진 와중에 자신이 구한 왕자를 따라 아렌데 왕국으로 숨어들어온다. 그리곤 이젠 적성부족이 되어버린 노덜드라 출신임을 비밀에 붙인 채, 아렌데의 왕비가 되어 살아간다. 여기서 왕자가 공주를 구한 것이 아니라 공주가 왕자를 구했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그보다 이민족 소녀의 정체성에 주목할 만하다.

어쩌면 인어공주의 사랑이 해피엔딩을 맞았다면 가능했을 서사이기도 하고, 결혼이주여성의 정체성을 환기시키기도 하는 이 이야기는 여성 주체성에 대한 이중적 함의를 지닌다. 즉 자신이 택하고 사랑하고 구한 남자를 따라 자기 부족을 등진 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여성의 주체성을 보이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의 주체성이 왜 하필 남성과의 사랑이나 결혼에 자신의 모든 삶을 ‘올인’하는 것으로 발현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품게 한다. 더구나 결혼과 함께 자신이 속했던 공동체와 자신을 구성하고 있던 정체성을 완전히 버리고 남성의 공동체와 정체성에 귀속되어 살아가는 것은 오히려 주체성을 잃는 것일 수 있다.



사실 결혼이주여성도 이러한 주체성의 양면을 지닌다. 한편으로는 적극적으로 자기 삶을 개척하기 위해 국경을 넘고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주체성을 지닌 존재인 면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초국적인 가부장제로부터 이중의 착취를 겪거나 ‘적응’의 이름으로 ‘내가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리며 살기도 한다. 가령 <아이앰러브>의 엠마가 러시아 출신임을 지운 채 완벽한 이탈리아 귀부인이 살았듯이. 그 안에는 외로움과 자기 분열이 깃들어있으며, 엠마 역시 그러한 분열로부터 결국 탈출한다.

이두나도 자기 정체성을 감춘 채, 이제는 적대적인 종족이 되어버린 노덜드라의 자장가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며 살았다. 그의 노래 속에는 서늘함이 스며있다. 그가 엘사의 비밀을 풀기 위해 남편과 북쪽 바다를 항해할 때, 어떤 심정이었을지 알 수 없다. 영화에는 너무 많은 행간이 남아 있다. 다만 인어공주의 성공담과 같은 ‘주체적인 결혼’이 1세대 여성(왕비)의 주체성이라면, 직접 재난과 싸우며 공동체를 구하는 ‘여성 영웅의 무용담’이 2세대 여성(엘사와 안나)의 주체성인 셈이다.



◆ 정체성의 문제

엘사는 전편에서 정체성에 혼돈을 느끼며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도망쳐서 혼자 있고자 했던 캐릭터였다. 2편에서는 적극적인 모험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스스로 알아낸다. 이것은 대단한 영웅서사이자, 성장담이 아닐 수 없다. <겨울왕국2>가 성장의 모티브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올라프를 통해서도 분명하게 암시된다. 대책 없이 낙천적이며 해설자 역할을 하는 어릿광대인 올라프는 엘사에게서 생명을 부여받은 캐릭터이다. 엘사가 없으면 자신도 소멸하는 올라프는 일종의 분신 같은 존재인데, 그는 엘사의 내면과 고민을 희극적인 버전으로 드러낸다. 올라프는 전편에서 “여름을 좋아한다”는 등 자기 정체성과 상반되는 말을 하곤 했다. 그는 2편에서 계속 “어른이 되면...”이란 말을 하며, 성장에 대한 고민을 드러낸다.

영화 중간에 올라프는 엘사와 더불어 죽었다 살아난다. 왜 이런 극적인 장치가 필요했을까. 그것은 정체성을 찾는다거나 성장을 한다는 것이 단순하고 점진적인 과정이 아님을 말해주는 것이다. 오히려 단절과 이반과 부정이 깃든 과정이며, ‘작은 죽음’이 내포된 과정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엘사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안개로 봉인된 비밀의 숲으로 들어간다. 맨몸으로 파도에 부딪히며 설산을 오르고, 존재의 비밀에 직면하는 두려움을 안은 채 동굴 깊숙이 발을 들여놓아 ‘작은 죽음’을 맞은 끝에, 마침내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 어머니의 땅에서, 소수자이자 특별한 존재로서, 인간세계의 주류적 삶이 아닌 마법세계의 정령으로 살아간다. 물의 정령을 타고 내달리는 엘사의 모습은 마침내 자기 자신이 된 편안한 모습이다.



◆ 거짓 역사와 적대의 청산

<겨울왕국2>의 아렌데와 노덜드라의 관계는 정치적 함의를 지닌다. 혹자는 백인과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관계를 연상하기도 하고, 한국인들 중에서는 4대강 건설을 떠올리는 이도 있지만, 그보다는 직접적으로 노르웨이 정부와 사미족 사이의 역사적인 사건을 지시한다. 사미족은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순록 유목을 하며 사는 인구 13만명의 소수민족이다. 1편에서도 순록이랑 트롤이랑 친구로 지내는 크리스토프의 모습이 사미족을 연상시켰는데, 2편의 노덜드라 부족은 사미족의 존재를 훨씬 구체적으로 가리킨다.

실제로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에 노르웨이 북부의 댐 건설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저항운동의 역사가 있다. 1970년 노르웨이 정부가 사미족 거주지인 마제마을에 알타 강 댐을 건설하겠다는 발표하자, 사미인들은 단체로 반대를 표명하였다. 1973년에 댐건설이 알타계곡의 연어와 자연에 해를 끼친다는 연구보고서가 발표되자, 노르웨이 환경운동가들이 여기에 합류하였다. 활동가들은 1978년 운동단체를 결성하고, 댐건설을 강행하려는 정부에 맞서 본격적인 저항운동에 나섰다. 사미인들과 환경운동가들은 법적 투쟁은 물론이고, 인간사슬로 건설 장비를 막아서고, 의회 앞에서 단식투쟁을 하고, 외국에 지지를 호소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했다.



하지만 정부는 대규모 경찰력과 폭동방지법을 내세워 강경 탄압에 나섰고, 투쟁이 교착되면서 시위대가 수자원에너지부 이동건물에 방화를 하는 등 폭력 투쟁이 일어났다. 이에 대한 책임을 둘러싸고 1982년 투쟁단체가 자진 해산하면서, 운동은 궤멸되어버렸다. 사법부는 댐건설 가처분신청과 주동자 처벌에 관한 재판에서 친정부적인 판결을 내놓았고, 결국 1987년에 알타 댐이 완공되었다. 하지만 무의미한 패배만은 아니었다. 노르웨이 북부의 사미족 거주지에 대한 사미인들의 권리가 국가적인 아젠다로 다루어져, 2005년에 핀마르크주 법에 명시되었으며, 사미인들도 투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20세기 전반 계속되었던 노르웨이 정부의 동화정책에 맞서 자신의 정체성과 문화를 찾게 되었다. 또한 환경운동진영도 댐 건설 반대에 함께하는 군소조직들을 규합하여 세를 늘릴 수 있었다.

영화는 이러한 시민 저항의 역사를 담아내면서, 이를 비유적으로 확장시킨다. 선왕이 노덜드라에게 댐을 선물하여 땅의 기운을 약화시키고자 한 근본적인 이유는 이들이 마법을 쓰기 때문이었다. ‘마법을 쓰는 이민족은 왕의 뜻을 무시한다’며 두려움을 심어주려 했던 것인데, 이는 전형적인 근대의 폭력과 개발의 논리이다. 심지어 이민족의 부족장을 죽이려다 전투가 벌어지고, 이후 기후 재난과 더불어 짙은 안개에 싸여 왕래할 수 없는 단절과 냉전이 초래되었다.



아렌데 사람들은 누가 냉전과 재앙의 씨앗을 뿌렸는지 알지 못한다. 오히려 이후 세대들에게 ‘이민족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이민족이 갑자기 공격했다’는 거짓 역사를 전승하면서, 이민족에 대한 공포와 적대를 키웠다.

엘사와 안나는 모험을 통해 역사의 진실과 할아버지의 원죄를 알게 되었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당연히 이민족과의 화해와 역사 청산을 이루어야 한다. 물론 영화는 화해와 청산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를 좀 더 뚜렷하게 보여주지 못한 것은 아쉽다. 노덜드라는 엘사와 안나가 동족의 딸임을 알고, 금방 친근감을 드러낸다. 안나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을 담은 동상을 광장에 세우는 장면이 있을 뿐, 노덜드라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나 화해를 제안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안나가 과거의 원죄를 씻기 위해 하는 것은 댐의 파괴이다. 댐이 파괴되면 아렌데도 파괴될 테지만, 안나는 댐의 파괴를 결단한다. 다행히 주민들이 대피한 상태라 인명피해는 없을 것이기에, 아렌데 성이 파괴되더라도 댐을 부수기로 한다. 이는 굉장한 결단이다. 자기 집단의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숲과 자연과 타자를 위해 댐을 부수어야 한다는 원칙을 받아들인 것이다. (안나는 마법처럼 특별한 능력을 지니지 않아도, 용기와 올바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만으로도 왕이 될 자질이 충분하다.)

하지만 아렌데의 파괴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엘사의 마법에 의해 성의 돌멩이 하나 부서지지 않는다. 그런데 굳이 이처럼 아렌데가 신성하게 보존될 필요가 있었을까. 아동 관객의 동심을 배려한 조치로 선해할 수는 있지만, 선대의 잘못을 씻는 청산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상징적인 성의 일부는 파괴되는 장면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성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안나가 지도력을 발휘하고, 왕으로서 민심의 지지를 획득하고 확인받는 장면이 삽입된다거나, 크리스토프가 성 안팎을 오가는 경계인으로서 노덜드라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든지, 노덜드라가 친선의 의미로 재건에 참여하는 장면이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크리스토프가 단지 안나의 남자로 양복을 빼입고 허수아비처럼 서 있는 것보다는 더 완결적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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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2>가 여전히 공주 스토리이고, 엘사와 안나의 외모가 지나치게 예쁘장하다는 점에 불만을 제기하는 관객도 있다. 하지만 공주 스토리나 그림체는 하나의 장르이고, <겨울왕국>시리즈는 장르의 법칙을 통해 대중관객의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완벽한 여성 영웅의 서사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성애를 들러리 세우면서 성정치학적 진보를 이루어낸다. 여기에 약 한세대 전에 소수민족과 환경운동세력이 연대하여 저항했던 실제 사건을 환기시키며, 소수자 정치와 생태 운동의 현재성을 일깨운다. 선대가 묻어버린 거짓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적대를 청산하고, 이웃과 화해하며, 자연의 질서를 회복해야 하는 것은 아렌데 사람들만의 과제가 아니다. 백마 타고 오는 엘사를 기다리지 말고, 마법 없어도 열 일하는 안나와 더불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겨울왕국2>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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