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판 오디션이라니... ‘씨름의 희열’의 아주 특별한 시도

2019-12-02 10:59:18



‘씨름의 희열’, 보는 방식만 바꿨을 뿐인데 씨름이 이렇게 재밌었나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KBS 새 예능프로그램 <씨름의 희열>은 과거 화려했던 씨름 부흥기의 회고로 시작한다. 만가지 기술을 가진 이만기라는 불세출의 스타가 등장했고, 인간 기중기 이봉걸이나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 여기에 모래판의 야생마 강호동까지, 저마다의 캐릭터를 가질 정도로 화려했던 씨름의 르네상스 시절이 그것이다. 씨름방송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60%가 훌쩍 넘는 놀라운 시청률까지 기록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

하지만 씨름의 부흥기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이만기나 강호동 같은 스타들이 모래판을 떠나면서 조금씩 열기가 식었고, 열기가 식자 어딘지 구닥다리 스포츠 같은 이미지로 남아 대중들의 외면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여기에는 이를 중계하는 씨름 방송의 늘 똑같은 형식이나 방식도 한 몫을 차지했다. 시대가 바뀌면 중계방송의 영상도 또 그 스포츠를 보여주는 방식도 달라졌어야 했는데 씨름 방송은 과거 부흥기 시절의 추억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다.



<씨름의 희열>이라는 프로그램이 탄생하게 된 건 그나마 최근 들어 경량급 씨름 선수들이 마치 아이돌처럼 팬덤이 생기는 새로운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씨름계의 여진구’ 황찬섭이나 ‘씨름계의 옥택연’ 손희찬 같은 지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잘 생긴 외모에 조각 같은 몸으로 모래판에 등장해 대중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씨름의 희열>은 씨름이라는 전통스포츠를 부흥시키겠다는 취지에, 최근 이들이 마치 아이돌처럼 소비되는 새로운 현상을 더함으로써 시도될 수 있었다.

씨름의 경량급이라고 할 수 있는 태백장사와 금강장사들을 각각 8명씩 선출해 총 16명을 모래판 위에 세우고 그들의 체중을 비슷하게 맞춘 후 서로 대결을 벌이게 해 최종 승자를 뽑는 <씨름의 희열>은 일단 그 경기장과 중계 방식 자체가 다르다. 물론 예능의 방식이 동원된 것이지만, 마치 쇼 무대처럼 구성된 모래판과 대기자석이 있고 한 편에는 이를 중계하고 해설하는 공간이 있다. 이건 그래서 오디션 프로그램의 무대처럼 보인다. 씨름이란 종목으로 샅바를 매고 나와 대결을 벌이는 것이 다를 뿐.



카메라는 <씨름의 희열>이 실제로 오디션 프로그램의 영상을 추구하고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도처에 세워져 있어 순식간에 승부가 나버려 놓칠 수 있었던 장면들을 카메라는 빼놓지 않고 포착해내고, 그 장면들은 슬로우 모션으로 자세히 보여지며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누군가 추는 춤사위처럼 아름답게까지 그려진다. 옆과 위에서 또 아주 가까이에서 본 모습과 조금 떨어져 보는 모습들이 교차 편집되면서 씨름의 자세한 기술들이 드디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씨름이 이렇게 재미있었나 싶은 건 바로 이 기술과 수싸움이 카메라에 의해 또 해설이 더해지면서 살아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씨름의 희열>이 성공적이라고 여겨지는 건 첫 방송에서 라이벌전을 시범적으로 보여주며(이것 역시 오디션 형식 그대로다) 여기 등장하는 선수들의 캐릭터를 하나씩 잡아냈다는 점이다. 씨름계 여진구, 옥택연이라 불릴 정도로 수려한 외모와 조각 몸을 가진 황찬섭과 손희찬, 승부욕이 강한 허선행과 대학선수지만 만만찮은 노범수, 늦깎이 장사 이준호와 최고령 장사로 남다른 경륜이 돋보이는 오흥민 등등. 선수들은 그저 경기만 하고 내려가는 게 아니라 그들이 가진 개성과 스토리가 더해지며 하나의 캐릭터로 보여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캐릭터는 향후 다양한 경기 속에서 훨씬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풀어내질 것이었다.

물론 토요일 밤에 편성된 <씨름의 희열>의 첫 방 시청률은 2%로 낮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그 실험적 시도 자체가 돋보이고, 한 번 보면 씨름에 관심이 없던 이들도 빠져서 볼 수밖에 없는 재미를 선사하는 프로그램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오디션 형식을 가져와 씨름을 부활시킨다는 그 취지와 의도도 박수 받을 만하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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