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 유튜버 나영석 PD의 예능역사상 가장 전위적인 실험

2019-12-02 14:04:14



유튜브도 접수한 나영석 사단, 더 이상 자기복제라는 비판은 없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신서유기 외전: 삼시세끼 - 아이슬란드 간 세끼>가 지난 금요일 막을 내렸다. 그런데 특별편으로 편성된 마지막 회는 나영석 PD, 이수근, 은지원과 함께 <알쓸신잡>의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가 모여 아이슬란드가 아닌 달나라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영석 PD는 지난 9월 말 첫 방송 기념 ‘채널 나나나’(나영석 사단 유튜브 채널로 현재는 ‘십오야’로 이름을 바꿨다) 실시간 방송에서, 구독자수가 100만 명을 돌파할 경우 은지원과 이수근을 달나라에 보내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바로 이 발언이 두고두고 화근이 된 탓이다.

유튜브란 세계를 전혀 몰랐던 TV제작자 나영석 PD에게 100만이란 그냥 현실감 없는 숫자이자 인사치레였지만 사이버 세상에선 그리 큰일이 아니었다. 공약 이행을 위한 다양한 출구를 조사하던 제작진은 직접 소통하는 콘텐츠와 플랫폼의 특성에 맞게 정공법을 택했다. 사과와 함께 방송 내외로 꾸준한 구독취소 요청과 구독취소 독려 방송을 2차례나 진행했다. 그리고 마지막 회 방송 마감 시간을 기점으로 구독자수를 100만 아래로 떨어트리는 ‘소통’에 성공했다. 물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126만 명을 돌파하며 가파르게 다시 상승 중이다.



<아이슬란드 간 세끼>는 <신서유기>의 오래된 벌칙 채무로 인해 아이슬란드에 갔지만 사실상 아이슬란드 여행이 핵심인 콘텐츠가 아니다. <신서유기>와 <꽃보다 청춘>의 감성을 더한 B급 버전이 아니라 나영석 PD가 강호동에게 말한 미래 방송, 그리고 X세대 이상의 방송 제작진들에게도 다소 낯설지만 당면한 세상에 관한 이야기였다. 무려 5분짜리 정규편성은 수십 년간 공고하던 편성 상식을 무너뜨리고, 리얼버라이어티 시대 이후 점점 더 방송시간이 길어지는 예능 문법과는 정반대로 걸었다. 본방사수를 비틀어 TV 본방을 예고편처럼 활용하는가 하면 편성과 심의의 제약이 매우 적은 유튜브를 십분 활용해 적극적인 PPL과 이수근, 은지원의 정제되지 않아 재미가 짙은 콤비 플레이를 선보였다.

마치 <워크맨>을 만든 JTBC 룰루랄라처럼 <아간세> 제작진은 인터넷 환경에 익숙한 이들에게 최적화된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일반 예능 방송에서는 할 수 없는 기내식 먹방, 아시아나 기내 비품 언박싱, 노골적인 PPL 등 유튜브 문법을 따르는 콘텐츠와 빠른 스토리 전개, 맥락을 끊는 자막 등 디지털 콘텐츠의 문법을 그대로 활용했다. 제작진, 출연자, 시청자가 생방송을 함께 지켜보는 실시간 방송이나 특이한 형식의 ‘합방(합동방송)’ 등 현재 이뤄지고 있는 인터넷 방송의 여러 방식들을 다채롭게 시도했다.



하나의 콘텐츠를 갖고 TV와 디지털 플랫폼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특별한 시도의 핵심은 시청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방송국에서 정규 프로그램을 무료 콘텐츠인 유튜브의 예고편으로 삼은 발상의 전환에 있다. <아이슬란드 간 세끼>는 TV 방송이 끝나고 1분 뒤 채널십오야에 유튜브 버전이 업로드된다. 즉 방송이 예고고 유튜브가 진짜다. 게다가 실시간 라이브방송도 심심찮게 펼쳐지니 관심이 집중되고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팬덤’을 형성할 수 있어서 시청자 입장에서도 재밌는 놀이다. ‘하나의 소통을 이뤘다’는 은지원의 말처럼 인터넷 콘텐츠가 갖는 최고의 특장점인 소통을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도 눈에 띈다.

이처럼 고정관념을 깨면서 최초의 출발선을 달리 하다 보니 흉내를 넘어서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 수 있었다. 나영석 사단의 이번 파격은 완벽히 통했다. 매회 전국기준으로도 3~4%대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물론, 유튜브 조회수 100만 이상을 기록할 만큼 인기와 화제를 모았다.



흔히들 나영석 사단의 시리즈를 비판할 때 자기복제를 언급한다. 그러나 여전히 높은 타율과 화제성을 자랑하면서도, 예능 시장에서 가장 전위적인 실험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역사상 유일한 집단이다. 이들이 5분짜리 방송이란 가벼움을 바탕으로 유튜브 초짜 느낌 팍팍 나는 콘셉트을 활용해 본격 ‘미래방송’을 위한 판을 넓혔다. 그리고 이 실험은 본격화, 시리즈화될 전망이다.

방송 말미 다음 주 방송될 새 프로그램 <라끼남>을 예고했다. 강호동의 라면 사랑을 주요 콘텐츠로 삼아 PD와 작가 각 1명씩 단 두 명의 제작진만 붙어 만드는 6분짜리 방송이다. 진정한 인터넷 방송 제작환경인 셈이다. <아간세>가 도전의 첫 삽이자 출사표였다면, <라끼남>은 본격 유튜브 콘텐츠를 지향하는 모양새다. 가장 유명한 출연자와 가장 조촐한 방송 제작 시스템의 만남에서 ‘미래방송’의 힌트를 또 어떤 식으로 찾아낼지 기대가 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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