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도 그럴 것”... ‘99억의 여자’ 조여정 선택에 몰입되는 건

2019-12-13 11:39:26



‘99억의 여자’, 어쩌다 조여정은 돈만이 삶의 기회가 됐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 어째서 100억이 아니고 99억이었을까. KBS 수목드라마 <99억의 여자>에서 이 수치는 정서연(조여정)이 공범이 된 이재훈(이지훈)의 의심을 사는 이유가 된다. 사고차량으로부터 정서연과 이재훈이 함께 훔친 현금다발. 그 현금을 일일이 다 세서 99억이라고 말하며 안전할 때까지 이 돈에 손을 대지 말자고 한 정서연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이재훈은 5억을 빼내 급전에 사용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당신도 그런 말할 처지가 아니라고.” 그는 왜 100억이 아닌 99억이냐며 정서연이 1억을 빼돌렸다고 생각한다.

이재훈에게 99억은 그런 의미다. 그저 거액의 돈이 아니라, 1억이 왜 모자란가를 그는 생각한다. 그의 욕망은 끝이 없다. 처음에는 반씩 나누기로 했다가 그 돈을 자신이 모두 챙겨 창고에 숨기게 되자 그 다음에는 그 전부가 자신의 것인 양 정서연에게 말한다. 신뢰나 믿음 같은 것들은 욕망 앞에 사라져버린다. 정서연에게 99억은 그 액수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절망 가득한 삶을 바꿔줄 수도 있을 것 같은 기회의 의미다. 물론 그건 신기루 같은 것일 지라도.



<99억의 여자>는 세 개의 세계를 병치시켜 보여준다. 정서연과 강태우(김강우)의 세계는 돈으로 인해 망가진 자들의 세계다. 정서연은 가난에 동반되는 폭력 앞에 쓰러진 인물이고, 강태우는 우직하게 사건에만 뛰어들다 뇌물혐의를 뒤집어쓴 채 경찰 옷을 벗게 되고 추락한 인물이다. 정서연의 남편 홍인표(정웅인)와 이재훈은 돈을 끊임없이 갈구하고 욕망함으로써 스스로를 타락시킨 자들의 세계다. 홍인표는 아내에게 폭력까지 쓰면서 사업에 이용하려 하는 인물이고, 이재훈은 부호인 운암재단 이사장인 아내 윤희주(오나라)와 결혼해 더러워도 비위를 맞추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리고 윤희주나 그의 아버지 윤호성(김병기)는 부를 손에 쥐고 있는 인물들의 세계가 있다. 그들은 돈으로 뭐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생각한다.

<99억의 여자>는 이렇게 돈을 가지거나 가지고 싶거나 하는 가진 적 없는 이들의 서로 다른 욕망들이 갑자기 나타난 99억이라는 돈에 의해 끄집어내지는 걸 보여주는 드라마다. 누구나 한 번쯤 살면서 생각해봤을 가정. 내게 99억 같은 거액의 돈이 생긴다면 과연 지금의 내 삶은 완전히 바뀔 수 있을까 하는 그 가정에 대한 막연한 판타지를 드라마는 담는다. 시청자들이 그것이 범죄인 걸 알면서도 용인하며 정서연의 선택에 점점 동참하게 되는 건, 우리네 사회가 그만큼 빈부의 차이에 의해 그 삶 전체가 규정되는 현실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바뀌지 않는 삶. 그러니 갑자기 나타난 99억의 의미는 단지 돈이 아니라 그 삶을 바꿔줄 수 있는 기회의 의미가 된다. 그래서 정서연의 입장에 몰입하게 된다.



물론 드라마는 돈이 누구의 수중으로 옮겨가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갈등과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스릴러 특유의 긴박감 넘치는 이야기의 힘을 보여주지만, 드라마를 그저 장르적 재미 그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건 정서연이라는 캐릭터가 주는 사회적 의미들 때문이다. 그래서 이 캐릭터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데 조여정은 실로 그 무게감을 든든히 떠받치고 있다 말할 정도로 빠져 있는 연기의 몰입을 보여준다. 이 작품이 끝까지 어떤 성취를 이루게 된다면 그 공은 그래서 온전히 조여정의 몫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정서연은 그 돈으로 삶을 바꿀 수 있을까. 그건 하나의 판타지지만 어떤 면에서는 어느 정도의 답은 나와 있다. 그가 자신을 심지어 죽이려던 남편으로부터 도망쳐 돈을 갖고 찾아간 곳이 그가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난 장금자(길해연)라는 인물이라는 점이 그 단서다. 장금자는 한 때 사채시장의 전설이었지만 이제는 거동 불편한 뒷방 늙은이가 되어 돈이 얼마나 무상한 것인가를 드러내는 인물. 마치 오랜 여행에 지쳐 돌아온 딸처럼 정서연은 그 집을 찾아와 잠 좀 자겠다고 말하고 잠이 든다. 그토록 욕쟁이로 간병인마저 떠나게 했던 장금자는 가만히 잠든 정서연을 보다 무심한 듯 이불을 꺼내 덮어준다. 그 장면은 이 드라마가 향후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에 대한 복선처럼 다가온다.



<99억의 여자>는 그래서 그저 99억을 두고 벌이는 공방전의 재미만을 담기 보다는, 그 돈에 의해 흔들리는 인간군상과 그 속에서 그래도 자신만의 소신과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삶이 어쩌면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는 그런 의미까지를 담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조여정이라는 배우가 가이드하는 그 돈의 세계로 조금씩 빠져들다 어떤 삶의 해답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돈으로 굴러가는 세상이지만 과연 돈은 희망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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