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다 마음, ‘골목’ 선한 백반집이 채워준 미담에 대한 허기

2020-02-20 11:45:35



‘골목식당’ 찌개백반집, 가성비보다 가심비를 건드린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 저런 분이 성공해야 살만한 세상이 아닐까. 아마도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공릉동 기찻길 골목 찌개백반집을 보며 많은 시청자분들은 그런 생각을 했을 게다. 자그마한 백반집에서 나온 음식을 앞에 두고 백종원은 이상한 비밀장부(?)를 꺼내 들었다. 거기에는 암호처럼 적힌 단어들과 수량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는데 그건 알고 보니 손님들을 기억하기 위해 주인 모녀가 부르는 이름들이었다. 노래방 아저씨, 달랑무 아저씨 하는 식이었다.

이 집이 얼마나 손님들을 가족처럼 대하고 있는가는 이들의 식성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 모녀를 통해 확인됐다. 배추김치 안 먹는 손님은 우체국 아저씨였고, 돼지고기 알레르기가 있는 분은 치과 선생님이었으며, 치과에서 오는 두 팀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어묵이고 면류를 좋아하는 단골은 육가공 하시는 분들이었다. 그렇게 척보면 다 알기 때문에 이 집은 들어서는 손님이 주문하지 않아도 알아서 서빙을 하는 놀라운 풍경이 연출됐다.



테이블 위에 놓여진 물건들을 보면서도 백종원은 평소와 달리 뭐라 지적하기보다는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 수저로 쓰이는 주황색 포크가 그랬고, 아이들을 위한 사탕통이나 심지어 각도기 같은 물건도 그랬다. 백종원은 원래대로라면 없어야 할 물건들이라 한 마디 했겠지만 이 집은 예외라며 정겨움을 느꼈다.

흑미밥에 소고기뭇국, 꽁치조림을 메인으로 반찬이 8가지나 나오는 백반의 가격은 6천원. 그 가격도 일 년 전에 올린 거라고 했다. 그 전에는 5천원을 받았다는 것. 백종원은 맛 평가는 하지 않고 반찬을 싹싹 비워가며 “오랜만에 집밥 먹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는 평가를 하고 싶지 않다며 이런 집밥 같은 백반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말했다.



급기야 백종원은 “이 가게는 방송 나가면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는 장부를 들어 보이며 “이분들(단골손님들)한테 죄 짓는 것”이라고 했다. 백종원은 “미리 죄송하다”며 손님들이 와서 줄을 설 것을 걱정했다.

이어진 백종원의 주방체크에서도 지적될 사항들보다 모녀의 손님을 위한 마음이 먼저 발견됐다. 낡은 식기들 속에서 밥그릇으로 쓰이는 막걸리잔이 보였는데, 그것 역시 손님들에게 좀더 밥을 많이 퍼주기 위해서였다는 것이었다. 본래는 스테인리스 밥그릇을 썼었지만 양이 적어 좀 더 큰 막걸리 잔을 밥공기로 바꿨다는 것.



냉장고 관리나 주방 관리에서도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맛에서도 별 문제가 없고 단골손님들도 있는데 왜 프로그램 출연을 결심했냐는 의문이 남았다. 여기에 대해 어머니는 지금까지는 현장식당으로 바쁘게 하느라 주먹구구식으로 해왔던 걸 제대로 배워 손님들에게 더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게 자신의 행복이라며.

사실 이 집의 음식이 완벽하다 할 수는 없었다. 3주후 다시 백종원이 방문했을 때 어머니가 끓여낸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에서는 고기 상태가 좋지 않아 국물은 맛있었지만 고기에서 냄새가 났고 해물순두부 역시 냉동해물의 맛이 별로 없었다. 물론 손맛이 있었지만 재료를 잘 선택하지 못했던 것. 백종원은 그걸 교체하기만 하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했다.



아마도 다른 가게 같았다면 이런 음식 맛의 문제가 더 심각하게 부각됐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백종원은 그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이 집에 대한 신뢰가 쌓여 있었다. 그 신뢰는 다름 아닌 맛보다 그 손님을 생각하는 마음과 정성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건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게다.

사실 지금의 소비자들은 소비를 할 때 질이나 가성비만을 따지지는 않는다. 그것보다는 그 소비가 주는 흐뭇함 같은 ‘가심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선한 소비’를 하고픈 욕구들이 더 커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공릉동 기찻길 골목의 찌개백반집은 맛이야 굉장하지는 않을지라도 그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흐뭇함과 따뜻함이 더 큰 만족감을 주지 않을까 싶다. 배가 고프거나 맛에 갈증을 느끼는 것보다 따뜻한 마음에 대한 허기를 채워줄 수 있을 테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목록으로

집중분석

더보기

더보기

많이본칼럼

더보기
[첫화면] [PC버전]
enter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