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사제’ 김남길, 개연성 떨어져도 시청자들 열광하는 이유

2019-03-17 13:23:15



시트콤에 가까운 ‘열혈사제’, 그럼에도 김남길에 빠져드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 옷자락 휘날리며 어느 컨테이너 박스의 문을 여는 김해일(김남길) 신부. 박스 안에는 그가 국정원 시절 사용하던 장비들이 있다. 사제복을 벗고 십자가 목걸이도 벗어놓은 김해일은 가죽점퍼를 입고 잘 빠진 오토바이를 타고는 황철범(고준)의 별장으로 달려간다. 이런 신부님의 멋진 모습과 바로 이어지는 장면은 황철범의 별장 앞에서 바야바 복장을 한 채 동태를 살피고 있는 구대영(김성균) 형사의 모습이다. 바야바 복장으로 라면을 끓여먹는 모습이 신부님의 멋진 모습과 대비되면서 더더욱 웃음을 준다.

이처럼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는 그 상황을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는 한 편의 시트콤 같다. 사제지만 형사보다 더 멋진 액션을 보여주는 전직 요원 출신 사제와, 형사지만 어째 쫄보 중의 쫄보인 형사의 대비만 봐도 그렇다. 함께 별장에 잠입하는 과정에서 김해일이 갖가지 첨단 기기들을 꺼내 보이자 구대영이 “전자상가에 다녀오셨나 봐요”하는 대목도 그렇고, 갑자기 강석태(김형묵), 정동자(정영주), 박경선(이하늬)과 함께 돌아온 황철범 때문에 별장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김해일과 구대영의 모습도 그렇다.



시트콤처럼 풍자적이고 과장되게 그려지기 때문에 그런 장면에서 긴장감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이 악의 무리들(?)의 행태들에 대한 분노 또한 크게 촉발되지는 않는다. 심지어 이 드라마에서는 황철범이나 부패한 구담경찰서장 남석구(정인기) 같은 악당들마저 희화화되어 있다. 그래서 갖가지 폭력과 비리들을 저지르는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건 어떤 현실적인 인물보다는 하나의 캐릭터 이미지다. 이들이 악을 공모할 때도 또 어떤 응징을 받을 때도 그래서 좀 더 편안한 웃음을 수반한다. 일종의 캐릭터 플레이처럼 보이는 것.

보통 어떤 비리와 그 비리를 캐고 진실을 밝히는 형사물 같은 장르물이 주는 감정은 긴장과 공포 혹은 반전을 통한 충격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열혈사제>는 캐릭터 플레이가 주는 웃음과 통쾌함이 주된 시청 감정이다. 이미 시청자들은 이 이야기가 어떤 구조를 갖고 있고, 그 안에 선과 악은 어떻게 대립해있으며 그래서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거라는 걸 다 알고 있다. 구담시를 모두 장악하고 있는 악의 세력들이 있고, 심지어 경찰과 검찰까지 거기 가담되어 있는 상황. 김해일이라는 신부 한 사람이 이들과 대적해 그 비리들을 깨쳐나가는 이야기.



너무 쉬운 구조로 되어있고, 사실상 이런 신부 캐릭터가 존재한다는 것도 또 그 신부가 이런 거대한 비리와 맞서 정의를 구현해간다는 사실도 현실적이라고 믿는 시청자들은 없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이 <열혈사제>에 시청자들이 빠져드는 부분이다. 시청자들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것이 비현실이고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일지라도,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잠시 동안의 유쾌함과 통쾌함을 얻고 싶어한다. <열혈사제>가 모든 상황들을 시트콤화하고 캐릭터화해서 보여주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건 뭘 말해주는 걸까. 한때 시청자들은 ‘개연성’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황당한 이야기가 어떻게 가능한가”하는 의구심을 제기하곤 했다. 드라마가 ‘비현실적’이라는 이야기는 그래서 시청자들이 몰입하지 못하는 이유로 작용하곤 했다. 하지만 믿기 힘든 사건들이 계속 터져 나오는 현실이 더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이제 시청자들은 드라마에서조차 그 참담한 현실을 애써 들여다보는 것이 힘겨운 지경에 이르렀다.



시청자들은 이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꿰차고 있고, 그래서 어떤 사안이 터질 때마다 저건 결국 저렇게 될 거야라고 예감한다. 그리고 그것이 어김없이 예감대로 흘러가는 현실에 진저리친다. <열혈사제>는 그렇게 이미 뻔한 구도가 되어 있는 현실을 가져와 비현실적이고 과장되며 풍자적인 이야기로 현실과는 다른 통쾌함을 선사한다. 시트콤 같은 과장과 믿기 힘든 전개에도 불구하고(어쩌면 그래서 더더욱)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에, 이 멋진 사제에 점점 빠져드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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