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가기 싫어’ 억울한 회사생활, 그렇다고 이게 해법일까

2019-05-08 13:18:30



시즌2로 돌아온 ‘회사 가기 싫어’, ‘가족같은회사가족같은’ 드라마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문구류 중소기업 ‘한다스’ 영업기획부는 오늘도 평화롭다. 비록 KBS 사원수첩 발주 건을 놓쳐서 매출이 급감했고,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을 거라는 소문이 흉흉하게 돌며, 위에서는 선배들을 앞질러 초고속 승진을 한 엘리트 차장을 꽂아 내려 보냈지만, 어쨌거나 오늘도 평화롭다. 평화롭다고 넘어가야, 퇴근을 할 것 아닌가. 비록 퇴근길 발걸음이 젖은 솜처럼 무거울 지라도 말이다.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을 하면 삶은 질식되어 죽어간다.” 알베르 카뮈의 말을 에피그라프(題訶) 삼아 시작했던 KBS2 오피스 모큐멘터리 드라마 <회사 가기 싫어>가 시즌 2로 돌아왔다. 영드 <오피스>의 흔적이 역력한 모큐멘터리 포맷 위에 토크쇼와 전문가 인터뷰, 캐릭터 코미디를 얹은 이 변종 드라마는, 소리 쳐 울분을 토하기엔 조금 애매하지만, 그렇다고 참아 넘기기엔 세상 억울한 회사생활의 A to Z로 가득하다.

일이 없으면 불안할 거면서도 일하기는 싫은 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들 또한 동지 된 마음으로 리뷰에 임했다. 정석희 평론가는 “일반 직원보다 임원이 더 많이 등장하는 여느 드라마들과는 차원이 다른” 리얼한 만듦새에 호평을 보냈고, 김선영 평론가와 이승한 평론가는 그 리얼한 만듦새에 비해 결론이 지나치게 나이브하거나 심지어는 호도된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 회장님의 숨겨진 아들 따위 없는, 진짜 직장생활의 고단함

KBS2 <회사 가기 싫어>는 ‘한다스’ 영업부 직원 모두의 이야기다. 일반 직원보다 회장이며 본부장 같은 임원이 더 많이 등장하는 여느 드라마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차장 강백호(김동완)와 ‘M문고’ 과장 윤희수(한수연)가 중심축이긴 하나 27세 신입 노지원(김관수)부터 62세 시니어인턴 박종수(최승일)까지, 서로 다른 사연들이 하나하나씩 소개된다. 시청자는 자신과 비슷한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하기도 하고 반대로 천적과도 같은 인물을 발견하고 분노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리얼 오피스 스토리’라는 간판을 내건 채 죽도록 연애만 하는 드라마가 아니어서 좋다. 만약 주말극이었다면 강백호든 노지원이든 누군가는 회사 실세의 숨겨진 아들이라는 설정이었으리라. 3년 차 이유진(소주연)이 얼마 전부터 강백호에게 싱숭생숭한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고 그걸 지켜보는 노지원의 시선 또한 심상치 않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일을 내팽긴 채 사랑 놀음에 몰두할 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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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방영분에서 ‘경단녀’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직장 상사에게 윤희수가 ‘결혼은 안 하는 게 좋은데 하더라도 애는 낳지 말고 회사는 계속 다녀라. 그래도 승진은 어렵다는 거냐’ 라고 받아치는 장면에 이어 양선영(김국희) 과장의 이야기가 전개됐다. 수석 입사에 11년 근속, 7년 차 워킹맘 양선영. 우여곡절 끝에 ‘슈퍼맘’이라는 칭송을 들은 뒤 양선영은 시청자를 향해 속내를 털어 놓는다. 슈퍼맘은 없다고. 될 필요도 없다고. 늘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사실 제일 미안한 건 내 자신이라고. 매일이 살얼음판일 양선영을 향해 온 마음을 다해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정석희 방송 칼럼니스트 soyow59@daum.net



◆ 절절한 문제의식에 비해 지나치게 관대한 결론

<회사 가기 싫어>는 절절하다. 해직의 위협에 시달리는 부장급 직원들의 비애를 다룬 1화부터, 여성 직장인들에게만 더 가혹한 유리천장의 문제를 다룬 5화까지, <회사 가기 싫어>는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뼈저리게 공감하는 주제들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월요병은 아직 안 나았고 금요일은 까마득하게 먼 화요일 밤에 방영되는 편성은 절묘하며, 문제를 제기해도 딱히 나아지는 것도 없다는 점까지 실제 회사와 똑 같이 닮아 있다.

그러나 <회사 가기 싫어>는 지나치게 관대하다. 회사를 지옥으로 만드는 문제점들에 대해 잔뜩 이야기하고는 “저 사람도 힘들어서 그러는 거지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니 우리가 이해하자”는 투로 문제를 봉합한다. 후배라는 이유로 상급자인 강백호 차장(김동완)에게 하대하고 부하직원을 괴롭히던 박상욱 과장(김중돈)은 ‘남성 갱년기’라는 이유로 제 행실에 대한 책임을 일부 면죄 받는가 하면, 동기인 양선영 과장(김국희)으로부터 “방법이 괴팍해서 그렇지, 박 과장 너네 생각 엄청 많이” 한다는 정성스러운 변호를 받는다. 시도 때도 없이 루머를 퍼트리고 웹툰 작가에게 악플을 다는 일을 취미생활로 삼던 정우영 대리(박세원)는, 자신의 행동 때문에 회사의 프로젝트가 자초될 위기에 처하자 비로소 사과에 나서지만, 아무도 그 사과가 진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문제 삼지 않는다.



직장 내 ‘꼰대’에 관해 다룬 2화에서는 심리학자 황상민이 출연해 선배들의 꼰대질을 “측은하게 느끼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그 분의 말씀에 ‘그러셨군요, 정말 훌륭하세요.’라고 격려”하는 마음으로 상대하면 자신이 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라는 말을 건넨다.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까진 좋은데, 결론을 내릴 때가 되면 슬며시 고개를 돌리는 것이다.

물론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부장도 과장도 다 위로해줘야 하는 오피스 드라마의 소명은, 누구 하나를 악역으로 몰아 책임을 묻기보다는 서로가 서로의 고충을 잘 이해하고 배려하자는 안전한 해답을 도출할 때 더 쉽게 달성되니까. 그러나 누구에게도 제대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건 결국 아무 해법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기왕 절절한 문제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했으면, 그에 대한 제 나름의 답도 건넬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어떨까?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 은폐보다 심한 착시

사회 문제 가운데 상당수는 오랫동안 사적인 문제로 치부돼 왔던 것들이다. 가령 아동 학대는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 데이트 폭력은 연인 간의 문제라는 것이 과거의 지배적인 인식이었다. 이처럼 사회 문제를 사적인 문제로 은폐해 온 곳으로는 한국의 회사 만한 데가 또 없다. 공식조직이면서도 ‘가족 같은 회사’라는 슬로건을 미덕처럼 여겨온 한국의 직장 문화는 공과 사의 경계를 자의적으로 넘나들며 숱한 차별과 폭력을 무마해왔다.

오피스 드라마로서 <회사 가기 싫어>의 가장 큰 장점은 그러한 회사의 본질적 속성을 꿰뚫어 보면서 그로부터 비롯되는 모순과 갈등의 사소한 부분까지 섬세하게 포착한다는 데 있다. 예컨대 파티션의 높이와 쫄대의 유무 등으로 직장 내 권력 관계를 설명한 1회의 한 장면만 보더라도 이 작품의 특성이 한눈에 드러난다. 직장 문화의 섬세한 관찰을 통해 회사 내의 다양한 부조리를 드러내는 장점은 확실히 돋보인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회사 가기 싫어>는 기껏 문제를 가시화해놓고도 이를 다시 유머 코드로 희석하거나 개인적 문제로 환원한다. 최근 들어 급부상하고 있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다루면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돈으로 환산해준다는 위자료 계산기’로 웃음을 자아내고 유당불내증이 있는 갑질 상사의 커피에 우유를 넣는 고전적인 복수로 응징하는 식이다. 그 상사가 ‘알고 보면’ 직원들을 엄청나게 생각하는 의리파라는 마무리는 또 얼마나 허무한가.

‘남자상사를 이용해 승진하는 야망녀’, ‘유부남과의 썸으로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키는 여자’ 등 여성을 향한 혐오와 질 낮은 언어들을 동원하고 이를 ‘오해와 진실’의 프레임으로 소비했던 윤희수(한수연) 팀장 루머 에피소드는 더 심각하다. 이 문제를 ‘세 개의 눈’이라는 글로벌 토크쇼 테이블 위로 불러오고도 기껏 사생활 침해 지적에 그치는 장면에 이르면, 제작진의 인식이 어느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문제를 은폐하는 것도 문제지만, 기껏 가시화해놓고 다른 문제인 양 착시를 유도하는 건 더 큰 문제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영상,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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