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이건 낯익은 정해인과 한지민의 로맨스가 아니다

2019-05-24 17:03:19



안판석·김은 콤비 신작 ‘봄밤’ 첫 주 평, 전작의 반복인가 심화인가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안판석 감독과 김은 작가의 신작 MBC 드라마 <봄밤>은 방영 전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몰고 다니는 작품이었다. 안판석 감독이 MBC <하얀 거탑>(2007) 이후 12년 만에 고향 MBC를 통해 선보이는 첫 드라마이자, 전작인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의 성공을 함께 만든 김은 작가와의 협업이며, 그 작품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정해인과의 재회다. 지난 몇 년간 영화 <밀정>(2016)과 <두개의 빛:릴루미노>(2017), <미쓰백>(2018), 드라마 tvN <아는 와이프>(2018)와 JTBC <눈이 부시게>(2019) 등을 통해 작품을 선택하는 안목을 증명해 보인 한지민의 차기작이라는 점 또한 사람들이 주목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 <봄밤>이 마침내 첫 선을 보였다.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는 이 기대작을 어떻게 보았을까? 정석희 평론가는 감독과 작가의 전작인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봄밤>이 배우들을 활용하는 톤앤매너가 지나치게 비슷하다는 점을 들어 다소 실망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이승한 평론가는 안판석 감독이 MBC <아줌마>(2000-2001)나 SBS <풍문으로 들었소>(2015) 등에서 보여줬던 가부장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해체 서사가 이번 작품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흥미를 가지고 보았다. 김선영 평론가는 구체적인 대사 없이도 인물의 성격과 심리, 관계를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안판석 x 김은 조합이 빚어내는 멜로의 공기를 상찬했다.



◆ 만능장도 너무 자주 쓰면 물리는 법이다

한때 백종원의 만능장이 대유행이었다. 서로 질세라 넉넉히 만들어 두고는 뿌듯해 했었다. 요리 초보들에게 신세계를 열어준 만능장. 그러나 뭘 해도 엇비슷한 맛을 낸다는 것이 문제였다. 양념 비율이 동일하니 당연한 결과다. 안판석 감독 드라마도 마찬가지. 감정에 충실한 인물 설정이며 직진 화법, 어두운 분위기, 연기자들의 중복 출연 등 겹치는 부분이 많다 보니 비슷하게 느껴진다. 익숙함을 즐기는 이들은 개의치 않을 테지만, 글쎄?



이른바 ‘안판석 사단’ 연기자들은 게임으로 치면 치트키 같은, 만능장 같은 존재이리라. 질리지 않게, 표 나지 않게 써야 되는데 이번 MBC <봄밤>에서는 완급조절이 부족했지 싶다. 예를 들어 길해연 배우는 JTBC <아내의 자격>부터 시작해 <밀회>, SBS <풍문으로 들었소>,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이번 MBC <봄밤>까지 다섯 편에 연이어 출연했는데 이렇듯 중복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처음이다. 전작들의 가사도우미, 역술가, 비서 역할과 달리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윤진아(손예진) 어머니와 <봄밤>의 이정인(한지민) 어머니가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는 서준희(정해인)의 아버지 역이었던 김창완이 <봄밤>에서는 유지호(정해인) 연적의 아버지로 등장하고 윤진아의 직장 상사였던 연기자 서정연은 서준희의 약국 동료로 나온다.

어쩌면 보물찾기 같은 재미를 줄 수도 있겠다. 그러나 SBS <열혈사제>의 수녀님(백지원)이 알고 보니 <밀회>의 심통 맞은 비서더라, 정도는 되어야 보물 찾는 재미가 아니겠나. 전작들에 담겼던 사회적 이슈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부모 캐릭터를 자식 결혼에 연연하는 존재로만 소비하는 점 또한 아쉬웠다. 일단 첫 주는 그랬다.

정석희 방송 칼럼니스트 soyow59@daum.net



◆ 수컷들의 허장성세가 가득한 세계를 부수는 이야기

“이건 진짜 비밀인데, 사실은 애가 있거든요.” 눈치 없는 현수(임현수)는 지호(정해인)의 ‘진짜 비밀’을 아무 생각 없이 기석(김준한)에게 흘린다. 지호의 사정을 들은 기석의 얼굴 위엔 미묘한 안도가 흐른다. “그런 줄 알았으면 좀 잘해줄 걸 그랬네.” “뭘 잘해줘요?” “불쌍하잖아.” 자신이 친구를 동정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현수는 화급히 지호의 편을 든다. “혼자 애 키울 수도 있지. 돈 잘 벌고, 건강하고, 부모님도 좋으시고. 딴 건 다 괜찮아요.” 기석은 비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그게 괜찮은 거야? 누가 좋아하냐?”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혼자서 애 키우는 남자를 누가 좋아하겠냐는 기석의 말에는, 자신이 소위 ‘정상가족’의 테두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가지는 우월감이 섞여 있다.

MBC <봄밤>의 세계는 수컷들의 허장성세가 꼴사납게 펼쳐지는 세계다. 태학(송승환)이나 영국(김창환)처럼 권력을 지닌 수컷들은 그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자식들의 혼사를 이용하려 하고, 제 그늘 아래 있(다고 믿)는 존재들이 자신에게 반대하는 기색을 보이면 상대를 깔아뭉개기 바쁘다. “바깥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나 공부 좀 해.” 아내 형선(길혜연)에게 큰소리치는 태학은 정작 그 ‘바깥세상’에서 학교 이사장 영국에게 굽실거리기 바쁘다.



아래를 향해 권력을 휘두르지만 위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건 기석도 마찬가지다. 정인(한지민)과 때가 되면 결혼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며 정인의 불만을 “삐짐” 정도로 치부하던 기석은, 아버지 영국이 “결혼은 비즈니스다”라고 말하는 앞에서 제대로 반박도 못한다. <봄밤>의 진짜 악당은 사람이 아니라, 감정이야 어찌 되었든 안정적인 상대를 찾아 가정을 꾸리고 그를 통해 부와 권력과 자손의 재생산을 도모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 믿는 가부장제 기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다.

결국 <봄밤>은 그 고리타분한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내는 이들의 이야기다. 정인의 언니 서인(임성언)이 방송국 아나운서라는 주목받기 쉬운 위치에 서 있으면서도 이혼을 결심하고 실천하려 하거나, 동생 재인(주민경)이 아버지 태학의 권력을 철저히 무시하는 것도, 남자 주인공 지호가 부와 권력에선 별 볼일 없는 집안에서 성장해 지금은 비혼부로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란 점도 모두 그 이유다. 가부장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기준에서 탈락한 이들과, 그 이데올로기에서 탈주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안판석 감독의 전작 중 <봄밤>과 가장 닮은 건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가 아니라 SBS <풍문으로 들었소>(2015)나 MBC <아줌마>(2000-2001)인지 모르겠다. 흥미롭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 대사보다 많은 진실을 보여주는 섬세한 멜로의 언어

“너, 참 이상하다. 뭔가 달라. 너, 뭐 나한테 말 안 한 거 있어?” <봄밤> 4회에서 정인(한지민)의 오랜 연인 기석(김준한)은 정인의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한다. 설명이 잘 안 된다는 정인의 말에, 그는 정인을 “건드리는 뭔가”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답한다. 살면서 말로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하지만 때로는 말보다 더 많은 진실을 깨닫게 하는 미묘한 감각들을 면밀히 포착하는 것은 안판석 멜로의 특징이다.

이는 일상처럼 흘러가는 짧은 대화 안에서도 인물의 성격과 심리, 관계 등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김은 작가의 장점과 만나 시너지를 발휘한다. 첫 회에서 정인과 기석이 나누는 차 안 대화 신이 대표적이다. 심사 팀으로 옮겨서 일이 많다는 기석에게 “더 바빠지겠네”라고 한숨 쉬듯 말하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정인, 그녀에게 “하긴 해야 할 거 아냐”라고 의무처럼 결혼 이야기를 꺼내는 기석, 그의 말을 듣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버리는 정인, 이 1분여의 장면을 통해 <봄밤>은 그동안 기석이 정인의 어딘가를 툭툭 건드려왔을 순간들과 둘의 연애사를 짐작하게 한다.



지호(정해인)가 정인의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과정도 그러하다. 다급한 표정으로 약국에 들어와 술 깨는 약을 찾는 정인에게 직접 약 뚜껑을 따 주고 다 마신 병을 버려주는, 사소한 듯하나 세심한 배려를 보여준 순간, 지호는 정인의 어딘가를 건드리지 않았을까. ‘운명적인 원샷원킬의 첫 만남’처럼 명확한 감정은 아니지만, 지호에게 자꾸만 신경이 쓰이고 끌리는 정인의 마음을, 드라마는 말보다 섬세한 연출을 통해 보여준다. 함께 밥 먹자는 지호의 말에 ‘모르는 사람과는 밥 안 먹는다’ 말하고 약국을 나와 걸음을 멈춘 채 한번 뒤돌아보는 순간, ‘친구하자’는 제안을 거절당한 뒤 쉽게 잠들지 못하고 애꿎은 핸드폰 액정만 껐다 켰다 하는 순간, 모두 정인의 마음속에 어떤 감정이 지나가고 있는지 잘 드러난다. <봄밤>의 장점은 그처럼 대사 없이도 사랑의 공기를 더 정확히 전달하는 섬세한 멜로의 언어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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