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꽃’ 횃불을 들었든 우산을 들었든, 역사의 주인은 그들이다

2019-06-18 13:28:35



‘녹두꽃’, 참혹한 결말 아는데도 해방의 기운 느껴진다는 건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드라마 찬(贊)△. 우리는 동학농민전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1894년에 전라도 전역에 집강소가 설치되고, 남녀노소가 귀천에 관계없이 서로 ‘접장’이라 부르며 맞절하여 존대했으며,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주민자치를 실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이가 몇 명일까. 1894년에 ‘이미’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공하여 고종을 체포했었음을 알고 있던 이는 또 몇이나 될까. 그저 1910년에 전투 한번 없이 국권을 빼앗겼다고 알고 있던 많은 이들에게 1894년에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탈하는 장면은 어안이 벙벙한 충격을 안겼다.

학교에서 동학농민전쟁, 갑오개혁, 청일전쟁이 모두 1894년에 일어난 사건임을 외웠지만, 이 사건들이 어떤 인과관계를 갖는지 배우지 못했다. 민중들이 봉기하여 무장을 하고 관군과 전투를 벌였다는 저항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 금기시되고, 조선군과 일본군이 힘을 합쳐 동학농민군을 무참히 학살했던 역사를 TV로 보여줄 엄두가 나지 않은 탓이었는지, 하고많은 사극들 중 동학농민전쟁을 다룬 작품은 없었다. 사실 동학농민전쟁은 민족주의 사관이나 왕조사 중심의 사관으로는 좀처럼 다루기 힘든 사건이다.

그런데 1894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다보니, 근대사 이해의 중요 고리가 빠져버렸다. 일본의 조선침략이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조선의 신분질서는 언제 무너진 것인지, 조선은 왜 망했으며 다른 길은 없었는지 등의 질문들이 안개 속에 갇혔다. 그 틈새로 괴상한 환상이 파고들었다. 명성황후를 망국의 희생자로 애달파하거나 고종을 개혁군주로 드높이려는 시도들 말이다. 마치 당시 조선사회가 단일한 공동체였으며, 일본만 아니었으면 아무 문제도 없었다는 듯이 안온한 환상을 부추긴다.



◆ 뛰어난 서사문학이자 디테일한 고증

SBS 드라마 <녹두꽃>은 동학농민전쟁을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사극이자, 민중 저항사의 관점으로 당대의 시대상을 정확히 조명하는 수작이다. 드라마는 역사적인 사실들을 충실히 재현할 뿐 아니라, 인물들의 역동적인 변천과 엇갈림을 통해 복잡한 당시의 조선사회를 압축적으로 이해시킨다. <녹두꽃>은 리얼리즘 서사문학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여느 대하소설 못지않은 스케일과 완성도를 보여준다.

극본만 뛰어난 것이 아니다. 연기와 연출도 빈틈이 없다. 특히 조정석과 한예리는 정확한 딕션과 집중된 감정으로 최대의 몰입감을 자아낸다. 윤시윤의 연기도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다. 너무 비장해지지 않기 위해, 때때로 로맨틱 코미디나 코미디의 연출이 곁들여진다. 카메라 워크나 음악의 다채로운 활용도 풍부한 정서를 자극한다. 더욱이 전라도 말맛을 살린 대사와 연출은 호남에 대한 보편적 친밀감과 매력을 한껏 느끼게 해준다. 그 결과 참혹한 패배로 점철될 결말을 알고 보는 것임에도, 드라마는 기이한 활력과 해방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감히 넘지 못했던 경계를 넘은 주체들의 호방함이 파열의 카타르시스를 안기기 때문이다.



<녹두꽃>은 고부관아에서 곤장을 맞고 풀려난 전봉준이 사발통문을 쓰며 민란을 준비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고부민란, 황토현 전투, 황룡강변 전투, 그리고 전주화약과 집강소 설치 등 역사적인 사건들을 충실히 재현한다. 사건의 줄기뿐 아니라, 전봉준, 손화중, 최경선, 김개남, 조병갑, 이용태, 홍계훈 등 역사적인 인물들에 대한 묘사도 생생하다. 보부상 조직이 관군에 이용된 것이나, 황룡강변 전투에 쓰인 무기 ‘장태’, 동학군과 일본의 천우협이 접촉한 사실, 그리고 대원군과의 연계 등도 모두 역사적인 사실에 입각한 디테일한 묘사이다.

하다못해 가장 비천한 이들이 관군의 화기에 물을 부어 무력화시킨 것이나, “갑오세 갑오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 되면은~” 하는 60갑자를 활용한 참요, 그리고 “서면 백산, 앉으면 죽산”등의 구절도 모두 역사적 기록에 근거한다. 그런데 <녹두꽃>의 최대 장점은 고증에 충실하게 역사를 재현했다는 데에 있지 않다. 그보다 심층적으로 당대의 시대정신을 조망했다는 데에 각별한 의미가 있다.

<녹두꽃>은 전봉준과 조병갑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역사적인 인물들은 모두 조연일 뿐이고, 주인공은 고부 이방의 두 아들을 비롯한 허구의 인물들이다. 이는 전봉준과 조병갑으로 대표되는 선악의 이분법으로 동학농민전쟁을 납작하게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놓이는 다양한 신분의 주체들을 내세워, 이들이 동학농민전쟁을 계기로 어떻게 변천해 나가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당시 조선사회가 택할 수 있었던 세 갈래 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는 것이다.



◆ 개화파의 운명과 위정척사파의 한계

백이현(윤시윤)은 수탈로 재물을 긁어모은 백이방의 적자로, 서당에서 양반자재들과 한학을 공부하였고 일본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다. 그는 신분질서에 묶여있는 조선이 일본처럼 ‘문명개화’하여 부국강병의 근대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또한 천대받던 서얼과 노비도 가족으로 존대할 만큼 개화사상을 실천하는 선각자이다. 하지만 그는 동학농민전쟁을 기점으로 엄청난 파란을 겪는다. 고부민란으로 집안이 기울고, 동학농민전쟁의 토벌군으로 징발된다.

그는 자신을 사지로 내몬 황진사(최원영)에 대한 울분을 살기로 쏟아내며, 동학군을 때려잡는 명사수 ‘도채비(도깨비)’로 악명을 떨친다. 간신히 살아 돌아온 그는 전봉준의 폐정개혁안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집강소를 통한 개혁에 앞장선다. 그러나 ‘도채비’였던 과거가 탄로 나자, 동학군과 자신을 무시해온 양반들을 죄다 학살하고 도주한다. 그는 상투를 자르고 일본이름 ‘오니’(도깨비)로 개명하고 천우협의 수장이 된다.

평등의식을 지녔고 개화된 조선을 꿈꾸었던 그가 조선침략의 전면에 서는 친일의 주체가 된 것은 조선을 ‘고쳐 쓸 수 없는 나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황진사의 말처럼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이다. 완고한 신분질서와 기득권 세력의 저항으로 개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새로운 주체에 의해 조선이 망해야 된다는 신념을 갖게 된 것이다. 그는 하급무사가 주축이 된 메이지 유신이 일본을 변화시켰다는 일본인 선배의 말에 크게 매료된다. 조선이 일본처럼 개화해야 된다고 믿었던 개화파가 자주적인 개혁의 희망을 놓아버린 뒤 침략의 앞잡이가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물론 여기에는 중인으로 겪었던 울분, 중앙 무대로 진출하고 싶은 출세욕, 그리고 동학과 함께 할 수 없는 흑역사, 전쟁 트라우마로 인한 영혼의 손상 등이 개입되어 있다.

그가 개혁을 꿈꾸었지만 동학과 함께 갈 수 없었던 것은 단지 개인의 사연에 머물지 않는다. 이는 일본과 친일정권이 주도한 갑오개혁에 폐정개혁안의 토지와 세제의 개혁 등 핵심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나, 개화파들이 처음에는 동학군에 동정적이었으나 정권을 잡은 뒤에는 일본군에게 동학군 토벌을 요구하였던 실제 역사의 유비처럼 읽힌다. 나아가 일찍이 일본식 개화를 동경하고 부국강병을 꿈꾸었던 엘리트 지식인들이 사회적·개인적 좌절을 통해 시기의 늦고 빠름은 있을지언정 결국 친일파로 귀결되었던 역사가 그의 행보에 잘 녹아있다.



황진사는 고부 향청의 좌수를 맡은 양반으로, 전봉준(최무성)과 함께 고부민란에 가담한다. 올곧은 선비로서 탐관오리의 학정은 시정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란이 고을을 넘으면 왕에 대한 반역이 된다며, 이후 전봉준의 행보에 맞선다. 그는 집강소 설치에 반대하고 동학군의 ‘득세’를 막았던 양반들의 조직인 민보군이 된다. 그는 사람이 평등하다고 믿는 사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는 황진사만의 생각이 아니라, 당시 양반 계급 일반의 생각이었다.

<매천야록>으로 유명한 황현은 당시 매관매직의 실태와 부패한 민씨 정권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 선비였지만, <오하기문>에서 동학군을 ‘도둑’이라 부르며, “순박한 노비들이 더러 (노비문서를) 태우지 말기를 원했지만, 기세가 원체 거세어 노비상전들이 더욱 두려워했다. 혹 사족이나 노비상전 가운데 노비와 함께 도둑을 따르는 자들은 서로 집강이라 부르며 그 법을 따랐다. 백정 재인들이 평민 사족과 맞절을 하자 사람들은 더욱 이를 갈았다”고 쓸 만큼 동학농민군에 대한 반감이 컸다.

전통적인 중화사상을 가진 유림들은 신분질서에 대해 보수반동의 행태를 보였지만, 일본군의 조선 침략에 대해서는 ‘척왜척양’의 이념을 동학과 공유한다. 일본군의 경복궁 침탈 소식은 유림의 반일의식을 자극했지만, 일본군과 동학농민군이 일전을 벌이는 2차 봉기 도중 양반들은 관망하거나 민보군을 구성해 관군, 일본군과 더불어 동학군진압에 나섰다. 하지만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척사 유림들을 중심으로 한 의병들이 거병하였다. 척사 유림을 대표하는 황진사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 제3의 길이 있었건만

백이강(조정석)은 부패한 이방의 서얼로 수탈의 행동대장 이었다. ‘백가네 거시기’로 악명을 떨치던 그는 고부민란이 터지자 분노한 농학군의 표적이 된다. 전봉준의 관용으로 겨우 목숨을 건진 그는 아버지의 흉계로 살인 누명을 쓰게 되자, 도주하여 동학군으로 흘러든다. 그는 과거의 악행으로 동학군들에게 배척되지만, “토벌대가 되어 공을 세우면, 죄를 면할 수도 있다”는 아버지의 충고를 거꾸로 실천하여, 동학군으로 전공을 세워 민중들에게 지은 죄를 씻고 전봉준의 신임을 얻는다.

동학군인 주인공이 수탈당하던 선인이 아니라, 수탈에 앞장섰던 악인으로 출발하는 것은 서사가 얼마나 입체적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전봉준을 죽이려던 그가 전봉준의 심복이 되는 이야기는 ‘사도 바울의 개심’처럼 극적이지만, 드라마는 극적인 개심의 순간을 집어넣지 않는다. 오히려 살기 위해 악행에 내몰렸던 주체가 서서히 민중으로 각성해가며 ‘거시기’에서 백이강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이 물 흐르듯 그려진다.

드라마는 전봉준과 동학군을 무결하게 그리지 않는다. 동학군 내부의 노선 차이와 지도력의 문제, 혁명 과정에서 수반되는 보복과 규율의 문제, 그리고 반혁명의 역풍까지 풍부하게 짚어낸다. 그리고 동학군에 대한 연구들도 상세히 녹여낸다. 가령 고부민란은 우발적인 봉기가 아니라 계획적인 거사였으며, 1차 봉기부터 이미 “척왜척양”의 반외세 기치를 내걸었고, 왕의 윤음을 전하는 사자를 죽이는 장면에서 보듯 동학의 사상이 ‘존왕주의’에 머물렀던 것은 아니며, 동학농민군들이 모두 동학을 믿었던 것도 아니다.



가령 드라마는 유월이(서영희)의 대사를 통해 동학과 동학군의 관계를 들려준다. 노비인 유월은 동비로 모함을 받아 쫓기는 상황에서 “그럼 나도 동비하지 뭐. 일자무식인 나도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가르친다는 말은 들어봤응께.”라 말한다. 당시 어윤중이 조정에 보고한 문서에도 있듯이, 동학군 중에는 동학을 종교로 믿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탐관오리나 외국 오랑캐에 반대하거나, 부정한 관리의 학대를 받거나, 목숨을 보전하기 힘든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백이강도 동학을 믿진 않지만, 황룡강변 전투에서 위기의 순간에 “시천주 조화정”의 주문을 외치며 동학군의 사기를 북돋운다. 이는 전봉준을 맞은 백가부부가 굿을 하듯 주문을 외우는 장면과 대조된다. 사회운동이자 혁명 사상이었던 동학을 종교적인 주술의 차원으로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지를 풍자한 것이다.

드라마는 전봉준의 말을 통해 동학군이 꿈꾸었던 이상이 무엇이었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내 보이며, 백이강과 동료들을 통해 동학군이 누구였는지 보여준다. 이들은 서얼, 백정, 유민, 포수 등 기층 민중들로, 이들에게 ‘보국안민’, ‘제폭구민’, ‘척양척왜’ 등의 구호는 현대어로 번역하면 자유, 민권, 평등, 자주의 의미를 지닌다. 신분질서를 온존시키려는 위정척사파와 일본을 등에 업은 개화파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자주적인 개혁을 통해 평등한 사회로 나갈 수 있는 제3의 길이 기층민들 사이에 제시되었던 것이다.

고종이 폐정개혁안을 받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개화파가 동학농민군과 손잡고 개혁에 나섰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2차 봉기에서 척사유림이 동학군과 함께 싸웠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등의 상상을 해볼 수 있지만, 나이브한 생각이다. 드라마가 보여주듯이, 개화파와 척사파와 동학은 서로 연합할 수 없었다. 대외관계와 신분질서에 대한 입장차이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결국 동학농민전쟁의 실패는 조선이 망국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 된다.



◆ 가장 정해지지 않은 운명

드라마 <녹두꽃>이 가장 독창적으로 주조한 인물은 송객주(한예리)다. 그는 왕조 중심의 역사는 물론이고 민중사학에서도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상인이다. 하지만 궁금하지 않은가. 조선의 근대화와 일제 침략은 조선이 자본주의 세계질서로 편입되는 것을 뜻한다. 농경중심의 자급사회였던 조선이 자본주의화 과정을 거칠 때, 변화의 한가운데 있던 상인들은 어찌 되었을까.

송객주는 보부상 전라도접장의 딸로 전주 여각을 열고 일본 상인들에게 쌀을 팔았다. 보부상은 관의 특혜를 받으며, 필요할 때면 관군에 동원되는 어용조직이었는데, 개항 후 일본상인을 비롯한 외국상인들이 들어오자, 보부상의 독점권이 크게 약화되었다. 외국상인들은 우세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개항장의 상권을 장악했다. 송객주는 전라도 산지의 쌀을 모아다가 일본상인에게 팔았던 중간상인으로 보인다. 여전히 관과 유착하여 동학군과 맞서려는 아버지에게 송객주는 이제 보부상의 시대는 갔으며, 관의 특권에 의존하지 않는 근대적 상인이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뺨을 맞는다. 보부상 조직은 대한제국 시절에도 살아남았으니 다소 이른 예측이었으나, 궁극적으로 송객주의 말이 옳았다. “쌀이 돈을 만드는 사회가 아니라, 돈이 쌀을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했으니 말이다.

1890년을 전후로 전라도 쌀의 70-80%가 일본에 수출되었다. 당시 일본은 오사카 등의 저임금 노동자와 하층민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본쌀 보다 훨씬 싼 조선 쌀이 필요했다. 쌀 수출로 조선의 쌀값은 폭등했으며, 농촌의 수탈도 가중되었다. 드라마 초반 송객주는 일본에 쌀을 팔면서 아무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군상으로 피 묻은 돈을 벌고, 죽을 고비를 넘고, 동학군이 된 백이강을 사랑하면서 차츰 문제의식에 눈뜬다. 송객주는 관군과 동학군 사이를 박쥐처럼 오가는 자신을 “부평초 같은 신세”라며 방어하였으나, 전봉준은 ‘약자 코스프레’를 하는 송객주에게 관과 결탁한 상인이나 일본에 쌀을 파는 상인이 어째서 역사에 반동일 수밖에 없는지 짚어준다.



상인으로서 자아와 욕망에 충실한 송객주이지만, 일본군의 경복궁 침탈을 본 뒤 자괴감에 휩싸인다. “그동안 나는 무슨 일을 한 것인가?” 하지만 그는 장사꾼답게 사익의 실현과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절묘한 줄타기를 한다. 일본군과 거래하며 민황후의 간자가 되어 주는 조건으로 특혜를 얻는 일석삼조를 거두는데, 궁극적으로 그가 청일전쟁에 나선 일본군에 군량미를 조달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부패한 민씨 세력과 결탁하여 특혜를 따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녹두꽃>은 송객주가 영리하게 머리를 굴리며 위기상황에서 살아남고, 가장 기회주의적인 방법으로 역사의 파고를 넘는 것을 보여준다. 그에게는 생존의 논리가 있을 뿐, 가치판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큰 틀에서 자본주의적 비전을 가지고 담대한 선택을 해나가는 광경은 이채롭다. 더욱이 여성으로 당대 신분질서에 얽매이지 않은 주체성을 지녔으며, 연애감정에도 진솔하지만, “가는 길이 다르다”며 사랑보다 자아실현을 택하는 모습은 매우 진취적이다. 그의 자본주의적 행보가 어떤 성장을 낳으며, 그에 대한 드라마의 가치판단이 무엇일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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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을 든 민중

<녹두꽃>은 <미스터 션샤인>과 더불어, 미처 알지 못했던 근대사의 역동을 새로운 (여성)주체를 내세워 조망한 작품으로 손꼽을만하다. 그런데 단지 우연이었을까. 의병의 역사와 동학농민전쟁을 다룬 드라마가 잇달아 만들어진 것은 다중이 민중사의 관점에서 근대를 바라보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이는 지배질서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공포와 혼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진보시키는 동력으로 감각하는 경험을 필요로 한다.

2016년 촛불봉기 당시 광화문에 횃불이 등장했다. 그에 앞서 광주에도 횃불이 등장했는데, 이는 1980년 광주를 재현하는 것이자, 동학농민전쟁을 소환하는 것이었다. 광화문에서 마주한 횃불은 대중의 뇌리에 봉기의 체험을 각인시켰다. 촛불봉기가 정권교체로 봉합된 듯 보이지만, 이를 넘어서는 혁명의 에너지가 저변을 흐르다가, 대중문화의 형태로 표출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987><미스터 션샤인><항거-유관순 이야기><녹두꽃><김군> 등은 역사 속에서 불의한 권력에 맞선 이들이 누구였으며,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이 무엇이었는지를 곱씹게 한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지금껏 관제 역사가 언급을 꺼려왔던 동학농민군, 의병, 의열단, 광주시민군 등 ‘총을 든 민중’을 두려움 없이 바라보게 한다. 총을 들었든, 횃불을 들었든, 촛불을 들었든, 우산을 들었든, 역사의 주인은 민중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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