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여왕’, 바보야 부와 권력보다 소중한 건 다른 데 있어

[엔터미디어=정덕현] “누가 있지 말래? 난 네가 내 옆에 있길 바랐다고 혼자 있기 싫었다고 언제나 그랬다고.... 집에 가자. 멀리 오면 있을 줄 알았거든 기적처럼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라든가 슬픔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든가. 없던데. 그냥 계속 당신이랑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시한부 판정을 받고 혹여나 기적이 있을까 싶어 독일까지 날아왔지만 홍해인(김지원)의 치료는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절망의 끝에서 그는 그곳까지 날아온 백현우(김수현)와 만나 꼭꼭 숨겨뒀던 서로의 진심을 꺼내놓고 뜨거운 키스를 나눈다.

이건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이 이들의 사랑을 그리는 방식이다. 시청자들은 다 알고 있지만, 정작 백현우와 홍해인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부인하려 한다. 고향 동네에서 갑자기 사라진 홍해인을 찾아 백현우가 그토록 절박하게 헤맸던 일이나, 헤어드라이기로 젖은 머리를 말려주고, 다친 상처에 밴드를 붙여주다가 애틋한 감정 같은 것들이 생겼던 것 모두 그가 홍해인을 그만큼 사랑한다는 증거들이 아닌가.

하지만 그 순간 백현우는 그 방을 뛰쳐나와 엄마가 하는 슈퍼에서 형과 소주를 마신 후 밤을 지샌다. 함께 한 방에서 지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게 돼서다. 하지만 그 밤 내내 홍해인 역시 백현우를 기다리며 잠 한 숨을 자지 못했다. 홍해인은 백현우에게 선을 긋고 철벽을 치는 도도한 모습이지만, 진짜 속마음은 다르다. 그는 수술을 위해 독일까지 가면서 자기 옆에 백현우가 있기를 바랐다.

이제 겨우 결혼 3년차인 이들이 각방을 쓰고 소원해진 건 나만 믿으라며 재벌가 사위로 들어왔지만 눈물 마를 날 없던 처가살이 같은 현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을 결정적으로 각방 쓰게 만드는 건 유산 때문이었다. 별이 되어 떠나버린 아이 앞에서 홍해인은 울 자격도 없다며 아무렇지 않은 척 했고, 백현우는 미리 꾸며놓았지만 필요없어진 그 방에 들어가 천장에 여전히 붙어 있는 별 하나를 보며 오열했다. 두 사람을 소원하게 만든 건 바로 아이의 죽음이 만들어낸 상처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또 다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그렇게 소원했던 백현우와 홍해인의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죽음으로 갈라진 관계가 바로 그 죽음의 그림자로 인해 다시 회복되고 있으니. <눈물의 여왕>은 돈과 권력을 다 가진 재벌가의 삶 앞에 ‘시한부’라는 죽음의 그림자를 던져 넣는다. 그러면서 묻는다. 결국 누구나 죽는 그 짧은 삶에 진짜 소중한 건 어디에 있는가를.

1조클럽에 들어가는 게 목표이고, 그 목표를 이루면 더 많은 돈을 벌겠다는 포부를 밝힌 홍해인이지만 그걸 다 이루면 뭘 하겠냐는 질문에 그는 좀 쉬고 싶을 것 같다며 남편이랑 여행도 가고 싶다고 말한다. 퀸즈그룹을 세운 홍만대(김갑수) 회장은 프랑스 시골소년이 황제가 된 나폴레옹을 가장 좋아한다며, 백화점 앞에서 구두를 닦다가 그 백화점의 주인이 된 자신을 이야기하지만 그저 나이들어 죽음을 향해 가는 한 노인일 뿐이다.

“상수시는 프랑스어로 걱정 근심이 없는 곳이란 뜻입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이곳을 짓고 전쟁 후엔 이곳에 와서 쉬었고 죽으면 이곳에 묻어달라고 말했죠. 세상을 정복했던 대왕도 마지막엔 이곳에서 그저 편히 쉬기만을 소망했던 모양입니다.” 상수시의 가이드가 말하듯 독일에서 최고의 군주로 칭송받는 프리드리히 대왕 역시 그 마지막 소망은 결국 편안한 안식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눈물의 여왕>은 로맨틱 코미디로서 때론 웃기고 때론 울리며 때론 설레게 만든다. 하지만 그 왁자지껄한 삶의 활기 속에서 그 삶을 진짜로 만들어내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삶의 운명을 눈앞에 둘 때다. 삶이 영원히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달을 때 그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되고, 결국 혼자로 돌아가는 짧은 삶이라는 걸 인지할 때 혼자가 아니게 하는 누군가가 더욱 소중해지는 것. 그래서 그 어떤 부와 권력보다 소중한 건 함께 집으로 돌아갈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마치 외면하듯 잊고 살아가지 않던가.

그래서 <눈물의 여왕>이 마주할 기적은 단지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홍해인이 극적으로 이를 극복하고 살게 되는 그런 일만은 아닐 게다. 그건 아이가 별이 되어 떠난 후에야 비로소 한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절감했던 것처럼, 시한부라는 판정 앞에서 진짜 소중한 건 바로 삶 자체이고 그걸 함께 하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일 테니 말이다. 기적은 그래서 그리 멀리 있지 않으며 바로 우리 옆에 늘 있는 것이고 <눈물의 여왕>은 말하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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